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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on the highway to hell

우리는 공멸의 길에 들어선 건 아닐까?

by Roke

최근 몇 년 동안 유심히 지켜본 것 중의 하나가 시사정치 콘텐츠의 활성화다. 왜 사람들은 이런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보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미의 한가운데에 '싸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정치인들이나 시사 평론가 혹은 언론인들에 대한 팬덤이 생기는 현상 같은 것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스포츠와 비슷한 양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은 축구 경기나 야구 경기보다 정치 경기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한다. 그리고 가끔씩 어떤 정치인들을 보면 스스로가 그런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스스로 한 명의 플레이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결론적으로 '이건 엔터테인먼트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집요하게 증거를 모으고 증명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뿐...)


가까운 누군가는 내 앞에서 정치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이 돌변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전에 스스로 말하고 다닌다. 웬만한 일에 스트레스 잘 안 받는 편이지만, '자유한국당'과 '언론'에 대해서는 화를 참을 수 없다고....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뉴스 같은 거 잘 안 본다. 그냥 오늘 하루 사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나는 이미 오래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솔직히 이젠 세상을 바꿔야 한다던가 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과거 한 때는 그게 나의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나하고 크게 관계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주 그런 일들이 나의 삶에 치고 들어 온다. 그리고 그 원인은 늘 자유한국당과 언론이다. 내가 그치들을 싫어하는 이유, 아니 증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삶의 방식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많이 늦기는 했지만, 이제야 어느 정도 확고해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내 대답은 '존중'이다. 간단하다.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알고 딱 그만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면 된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 존중하는 태도만 갖고 있다면 의사소통은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개인적으로 '잇권의 시대'라고 명명한 지금의 시대도 개인이나 집단의 잇권에 대해서 충분히 인정한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상호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한 것이고,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두 집단은 좀 심각하다. 단순히 태도가 다르다는 문제를 넘어서,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 게임에 플레이어로서 이겨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이건 옳지 않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없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을 나에게 '편향적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먼저 하는 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먼저 이 말을 던짐으로써 '나는 편향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선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전제가 다른 데... 그러니까 상대방이 이미 편향적인데 더 이상 대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맞다. 나는 편향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편향적이다. 서로 그것을 인정해야 대화가 될 수 있다.


편향적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그래서 편향적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왠지 나쁜 것,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로 중립적이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의미는 판단 즉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에 어느 누군가가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한 결과로는 그렇다. 편향적이지 않고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무엇에 대해서 결정을 내렸다는 건, 이미 그 자체로 중립적일 수 없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얼마나 타당한 논리 혹은 배려가 포함되어 있느냐는 문제일 뿐이다.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괜찮다. 그건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이다. 아니 본능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누군가를 밟아야 살 수 있다? 당연히 누군가도 나를 밟아야 살 수 있다. 그런 삶의 태도를 갖고 살 수 있다. 충분히 그런 태도를 존중한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그런 태도를 다른 것으로 포장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시작이다. 자기 자신을 애써 포장하려고 하는 것은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뜻이다.


Highway to Hell (by AC/DC): 3분 27초

1979년 7월 27일 발매 (싱글)

작사/작곡: Bon Scott, Angus Young,
Malcolm Young

이 곡은 싱글로 먼저 발매가 되었고, 후에 동명 앨범에 첫 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하지만 기록 상으로는 앨범과 싱글이 같은 날 발매된 것으로 나온다.

앨범은 호주 내에서는 6번째, 국제적으로는 5번째 앨범이다.

리드 보컬이었던 Bon Scott의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다. 그는 이듬해인 1980년 초에 33살의 나이에 과음(?)으로 죽었다.

지금도 AC/DC의 팬은 아니다. 그나마 'Hells Bells'정도 들어본 편? 하지만 예전부터 이 밴드의 광팬들은 꽤 알고 있다. 익숙하진 않지만, 음악은 가끔 들으면 좋다. 특히나 리프 위주의 기타 플레이는 내 스타일이기는 하다. 록 사운드에 충실한 음악이기에 가가이 하기에 나쁜 건 없다. 다만 집중해서 듣기에는 피곤할 때가 많다. 이들이 에너지가 넘치거나 내 에너지가 부족하거나...

삶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예술에 있어서 당연히 분노를 표현할 수 있고, 또 때로는 그런 작품들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한다. 나도 평소에는 그런 음악들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그런 분노를 가라 앉히게 되다 보니, 곡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일정한 방향성을 보인다. 그러니까 헤비메탈과 같은 과격한 음악을 일부러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취향대로 때리고 부수는 음악을 중심으로 얘기를 하다 보면 말이 좀 거칠어질 수 있으니까....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딱 이러고 싶은 때가 있다는 것.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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