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e Jan 16. 2016

한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하여

the one that I've been waiting for

금요일 오후, 친구와 차 한잔 하는데... 처음 듣는 렛잇비(Let it be)가  흘러나왔다. 저음에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목소리다.  조금 소리가 작긴 했지만, 휴대폰을 꺼내어 사운드하운드(Soundhound)를  실행시켰다. 스피커와 멀리 있어서 역시 한 번에 잡지는 못했다. 1차 사냥 실패. 그래도 꿋꿋하게 다시 돌렸다. 성공, 그리고 나타난 결과는 (적어도 내게는) 경악 그 자체! 였다. 닉 케이브라니.... 닉 케이브라니!!! 앨범은 'I am sam(OST)'. 아... 그랬었구나... 너무나 익숙한 두 가지가 합쳐졌는데,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금요일 밤... 결국 다시 닉 케이브(Nick Cave and the bad seeds, 이하 '닉 케이브')에 탐닉한다.


내가 아끼고 아끼는 조합이 있다. 바로 닉 케이브의 '(Are you) the one that I've been waiting for'라는 노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4월의 어느 아침에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다. 하루키의 단편을 훨씬 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처음 읽은 순간의 전율을 기억할 만큼 좋아하는 단편이다. 그리고 후에 이 곡을 들었을 때, 소름이 돋도록 같은 전율을 느꼈다. 언제나 나에게 이 둘은 세트다. 지금도 가끔씩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하루키의 단편을 찾아 읽는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고, 사람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한 때는 사랑을 믿었다. 어렴풋이 환상인 줄 알면서도 100%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100%의 한 사람과  마주쳤을 때의 그 느낌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 신호는 어떻게 올까? '쿵'하는 느낌일까, 아니면 '철썩'  내려앉는 기분일까? 뭔가 두근두근하는 기분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너무 흔하다. 어디선가 본 듯 한 느낌일까... 아니 그 신호는 어디로 올까? 발가락  끝에서부터 올라올까? 아니면 머리 끝에서 내려올까? 혹시 가슴으로 바로 오는 것일까? 아...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흥분이 돼. 그게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건 얼마나 대단하고 근사한 일일까....


훗. 지금껏 그런 경험은 없었다. 다만 첫 만남이 뭔가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첫 만남이 유난히 오래 기억되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94% 인지, 88% 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디서 출발하든 100%에는 한 번쯤은 도달했던 것도 같다. 머무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결국 누군가를 만나는 최고의 순간은 '0'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  그때가 가장 흥미롭고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그런 순간이 아닐까. 그래서 100%의 여자 아이를 만나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참, 슬픈 이야기다. 


*(Are you) the one that I've been waiting for (by Nick Cave and the bad seeds): 4분 5초

*1997년 3월 19일 발매 (싱글)

*1997년 3월 3일 발매된 밴드의 열 번째 앨범인 'the boatman's call'의 여섯 번째 곡이며, 두 번째로 싱글 발매된 곡이다.

*작사/작곡: Nick Cave

*'the boatman's call' 앨범은 이들의 최고 역작으로 꼽히며, 이후의 포스트 펑크 시대의 출발점이 된 앨범이다.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음반 1001'에도  선정되었다. 하지만 워낙에 대중적인 뮤지션은 아니기에 차트 성적은 좋지 않다.

*(Are you) the one that I've been waiting for 역시 영국 외에는 차트 순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Nick Cave and the bad seeds)는 호주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1980년대 초반에 결성되었는데, 80년대 후반에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음악 활동을 했고, 덕분에 빈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에 등장하게 되었고, 나도 그 영화를 통해서 이들을 알게 되었다.

*닉 케이브의 외모도 그렇고, 밴드 이름에 'bad'도 들어가니까, 예전부터 '나쁜 남자'하면 나의 머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닉 케이브가 떠오른다. 모 어떻게 들으면 노래도 그다지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편은 아니다.

*전체적인 음악이 도시 안의 감춰진 공간 같은 느낌을 준다. 대체로 그늘에 있는 약간 어두운 이미지의...

*이들의 앨범을 국내에서는 구경도 하기 힘들어서 이름만 기억하고 있다가 외국 여행 중에 눈의 뜨이길래 바로  사 왔는데, 운 좋게도 이 앨범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좀 어렵고 난해한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좋았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이 있은 후에 그리움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