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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Feb 20. 2016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옛날 옛적에, 우리가 순수했을 때

가끔씩은 토요일 오후가 되면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밑으로 보이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골목길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보이는 풍경이란 게 별 거 없다. 정해진 길에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그게 전부다. 그렇다. 여기서의 풍경이란 '사람'이다.


사람이란 게 참 묘한 존재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모두 다 아름답다. 추운 날씨에 옷깃을 붙들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이나, 한 껏 멋을 내며 차려 입고 걸음걸이도 당당한 사람... 내게 보이는 것은 그것 뿐임으로 나는 그것을 보면서 상상을 한다. 약속 시간이 좀 늦었는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만나러 가는가? 그렇게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애틋하기도 하고,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어떤 경우는 소리쳐 "00아!"라고 부르며 손을 흔들고 아는 척이라도 하면 잠깐이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다른 일이 없다면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까워지게 되면 상상은 사라지고 듣는 정보만이 남게 된다.


단지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이 순간 내가 상대방에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계산과 혹시 모를 상대방의 요구에 대한 긴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순수는 관계의 거리가 결정한다. 애초에 순수라는 단어는 비어 있다는 뜻에 가깝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상태. 그러니까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누군가를 순수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때, 그 이면은 잘 모른다거나, 나하고 친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순수함은 추구해야 할 목표는 아닌 것 같다. 살면서 누군가와도 가까워져야 하고,  가까워진다는 것은 책임도 지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게 되는 일이다. 만약 어느 순간 문득 순수함이 그리워지거나, 다시 그 감정을 찾고 싶다면 이층 창가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그거면... 된다.


이층에서 바라보는 거리는 어쩌면 나의 과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 여행일지도 모른다.


*이층에서 본 거리 (by 다섯손가락): 4분 36초

*작사/자곡: 이두헌

*1987년 1월 1일 발매

*다섯손가락의 세 번째 앨범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솔로 앨범이다.

*그야말로 소리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대학생 밴드인데, 음악이 엄청 좋아서 '이 사람들 뭐지?'라고 놀랬던... 처음에는 아마추어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게 웬걸 엄청 좋잖아?'라는 반전을 주었던 밴드가 다섯 손가락이다. 1985년에 나온 이들의 1집은 명반으로 꼽아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단촐해진 모습(5인조에서 혼자로..)으로 3집이 나왔는데, 나는 이 3집이 좋다. 녹음 상태가 당시 기준으로도 좀 아쉽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음악이니까...

*이 곡은 그렇게 난이도가 어려운 노래 같지는 않은데... 직접 부르려고 하면 도무지 멋이 안 난다. 기타 메고 직접 연주하면 불러야 하는 곡이 아닐까...

*'이층에서 본 거리 외에도' 좋은 노래들이 많다. 1집에서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두헌(기타)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다. 이 앨범에서는 원 없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두헌의 음악 특징은 음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듣다 보면 시각적인 느낌이 강한 노래들이 많다. 그래서 때론 오히려 반주 없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지는 주로 가사에서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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