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하신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저번주에는 가볍게 조니워커 라벨과 음악을 연결해 보았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틈틈이 글을 쓰려다 보니 퀄리티가 일정하지 않아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즐겁게 관전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름이 시작되고 유례없는 폭염이 찾아오면서 다들 지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잠깐의 자유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냅니다. 나 스스로와 대화를 하며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나에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말을 듣기 위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음악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찾아볼 수 있어요.
저희가 가져온 나름의 위로입니다.
부디 푹 쉬었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불운과 동행하기
다음 주면 제 교사 인생 첫 방학이 찾아옵니다. 2월 신학기 준비부터 7월 중순까지 개인적이든 일 적으로든 살면서 가장 정신없는 반년이었던 것 같아요.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지금 오늘은 제가 1학기때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를 가볍게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가져온 음악은 제 영원한 아이돌, 아이유의 'unlucky'에요.
아이유가 직접 쓴 소개글의 일부를 먼저 소개해볼게요. 'unlucky'는 2019년 11월 18일 발매된 미니 5집 'Love Poem'의 첫 번째 트랙에 수록된 곡입니다. 아이유는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love poem'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응원이라면, 이 앨범의 첫 트랙인 'unlucky'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응원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잘 짜인 장난 같은 인생 위에서 행운에 휘둘리는, 어쩌면 행운에 기대려 하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경쾌한 음악에 담았다고 해요.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고, 내가 가는 길에서 정답을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언젠가 귄이 소개했던 '수성의 하루'의 화자가 결국 주저앉아서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면, 'unlucky'의 화자는 꽤나 담담하게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길을 잃었다면 또각또각 가볍게, 비틀거리면 또박또박 똑바르게 '나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거죠.
아이유는 2019년에 이 노래를 만든 후 인생이 본인에게 못되게 구는 순간이 찾아와서 앨범 발매를 연기합니다. 그리고 'unlucky'를 부르다가 과호흡이 온 적도 있다고 해요. 그리고 5년이 지난 2024년에 'HER'앙코르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unlucky'를 선보입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본인이 쓴 가사처럼, 결국 이겨내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멋진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년 차 교사 주제에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맡게 되고 한 학기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갈등의 가운데에 서서 조율을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방구석에 혼자 찌그러져서 위스키를 한잔 하는 걸로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저에게 잊고 있었던 'unlucky'라는 노래는 갈등의 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저에게 방향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장난 같은 하루를 풀어내는 방법은 결국 나를 믿고 가볍게, 바르게, 나의 보폭으로 내 길을 가는 것이구나.
그리고 가사에서 답을 찾았어요.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불안해 돌아보면서도, 별 큰일 없이 지나온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그래볼게"
#사랑이라는 기억
https://youtu.be/oE56g61mW44?si=Nw_ssJixKn47p2cl
가끔은 음악이 너무 따뜻해서, 괜히 가슴 한쪽이 뭉클해질 때가 있습니다.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는 그런 곡입니다. 너무나 솔직하고, 너무나 벅찬 마음이 담겨 있어서 듣고 있으면, 어느새 내 마음도 따라 웃고 있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 노래는 스티비 원더가 딸 ‘아이샤’의 탄생을 기념하며 만든 곡입니다. 작은 생명이 품에 안겼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 그걸 어떻게든 표현해 보려 애쓴 아버지의 마음이 단어 하나하나, 멜로디 한 줄 한 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Isn’t she lovely? Isn’t she wonderful?
Isn’t she precious? Less than one minute old.
태어난 지 채 1분도 되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부모의 감정이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적이겠지요.
스티비 원더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었지만,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으로 세상을 노래했습니다. 〈Isn’t She Lovely〉에는 실제 아이샤의 울음소리도 담겨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곡 안에 딸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노래는 더없이 특별해집니다.
싱글로 정식 발매된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이 곡을 오랫동안 기억해 왔습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겠죠.
시간이 흘러 아이샤는 자라고, 스티비 원더는 여전히 사랑을 노래합니다. 〈Isn’t She Lovely〉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처음 그 순간처럼 따뜻하게 들립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사랑했던 그 마음처럼 말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문득 오래전 기억들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 하나로 하루가 환해졌던 순간들. 그래서 저는 이 노래를 가끔 꺼내 듣습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조용히 떠올려보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Tempo Rubato
https://youtu.be/3J5uLk1DJV0?si=-4QeyQPKk5Tu_v4y
오랜만에 제이팝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제이팝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폭력적인 드럼 비트와 기타 인트로를 가진 이미지 일 수도 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몽환적인 밤과 어울리는 시티팝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곡처럼 재지 한 느낌의 곡들도 많이 있죠. 일본의 혼성 2인 밴드 Yorushika의 Rubato입니다.
제목인 ’Rubato‘는 사실 클래식 용어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도둑맞은’ 이란 뜻으로, 자유로운 템포로 연주하라는 의미를 지닌 악상기호입니다. 즉, 연주자의 해석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사의 내용도 템포를 자유롭게 흘려보내듯, 즐거움과 슬픔, 사랑과 잊힘이 뒤섞인 삶의 순간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입니다. 대중적인 멜로디나 정해진 기쁨이 아닌, 복잡한 감정들조차 진심으로 껴안으려 합니다. *Da Capo라는 표현을 쓰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질리지 않을 무언가를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Da capo - 다시 처음으로
곡의 내용만큼이나 구조도 재미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재즈의 다양한 스타일들을 차용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첨부음원 기준 0:40엔 스윙리듬의 라이드심벌에 스네어와 킥은 자유롭게 연주하는 모습을 빌려왔습니다. 1:47엔 워킹베이스가 들리고, 3:34의 아웃트로에선 스트라이드 주법과 즉흥 멜로디를 보여줍니다.
이 곡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인트로에 나오는 트럼펫 멜로디를 잘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멜로디를 기반으로 피아노와 기타의 솔로가 중간중간 등장합니다. 이 구성은 재즈의 양식을 대중음악에 적절하게 섞어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즈만큼의 자유도와 즉흥성은 없지만, 대중음악에 이런 구성들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런 선택들은 다 곡의 메시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목인 Rubato, 자유롭고 즉흥적인 재즈라는 장르를 접목한 점, 가사의 내용 등을 미루어보았을 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더라도 자신에겐 진짜인 감정을 따라가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템포보다도 중요한 건 스스로의 속도니까요.
무얼 할지 몰라 막막하고, 자꾸 뒤처지고 낙방하고, 그래서 사는 게 우울해져도 크게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루바토 중인 겁니다.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법이니까요. 돌아올 *a tempo를 기다리며 지금은 잠시 흐름에 몸을 맡겨도 좋은 것 같습니다.
*a tempo - 원래 빠르기로
#속도보다는 방향성, 목표를 향해
https://youtu.be/wccRif2DaGs?si=zy1Gqns7CzDr6t0j
1년 전 훈련소에서, 훈련의 꽃인 마지막 행군만을 남겨둔 한 토요일이었습니다. 그전까지의 고된 일정에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던 저는 주말마다 하는 대청소를 끝내고 겨우내 얻은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어요.
마침 조교가 훈련병들의 신청곡들을 틀어주고 있었고, 어느 순간 듣자마자 ‘이 곡은 평생 기억에 남겠다’라고 생각한 곡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 찾아온 노래, 바로 Billy Joel의 “Vienna”입니다.
제가 언젠간 꼭 소개하고 싶었던 곡 “Vienna”는 1977년, 빌리 조엘이 발매한 발라드 락입니다. 빌리 조엘은 대표곡 “Piano Man”으로 유명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이 ”Vienna”는 빌리 본인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도 하는데요. 유년 시절의 빌리가 아버지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 방문했을 때 아버지가 했던 조언을 주제로 가사를 썼다고 해요. 가사를 읽다 보면 후렴의 마지막 구절이 돋보일 겁니다.
“When will you realize Vienna waits for you?”
여기서의 비엔나는 화자의 미래, 앞으로의 삶, 노년 등을 뜻한다고 합니다. 삶이 자기 생각만큼 이상적으로 흘러가진 않겠지만,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 온 자기만의 삶 자체가 당신을 기다린다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가사 속 조언자는 무작정 잘될 거라는 책임 없는 감언이설만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인생엔 여러 역경들이 있다고, 너의 생각대로 다 되지는 않을 거라고. 그것에 매몰되지 않을 때 비로소 너만의 삶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 노래는 제가 가장 힘든 순간 가장 필요했던 말로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저는 마치 저의 아버지에게 위로를 받는 듯한 포근함을 느꼈어요. 만약 지금 누군가가 고된 인생에 지쳐 있다면, 여러분에게도 이 노래가 찾아갈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나요? 너무 바쁘게, 치열하게 살아오진 않았나요? 이 노래 안엔 여러 조언들이 담겨 있지만, 결국 당신이 느꼈으면 하는 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비엔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