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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하茶

소식지 구르다 2025, 대서 편

by 구르다

차와 사람과 이야기 16

: 무라타 주코 村田珠光







마음의 글, 무라타 주코


차노유의 도(道)에서 가장 나쁜 것은 자만과 아집이다. 자만하는 마음이 있으면 차노유의 기교가 뛰어난 사람을 시샘하게 되고, 초보자를 무시하게 된다. 이것은 특히 좋지 못한 것이다.

차노유의 솜씨가 능란한 사람과 접촉하여 자신의 미숙한 점을 깨닫고 가르침을 부탁하며, 또한 초보자의 수행을 도와주고, 성장에 이바지해야 한다. 차노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와칸(和漢)의 경계 즉, 일본적인 것과 중국적인 것의 경계를 융합시켜 혼연일체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것으로 항상 마음속에 유의해 두어야 한다. 또한 요즈음 히에카에루(ひえかえる)의 경지라고 해서 초보자가 와모노(和物)인 비젠야키와 시가라키야키 등을 사용하여 누구도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가루루(かるる)라는 경지는 좋은 도구의 좋은 점을 다 음미해 본 후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정신적인 기반이 생기고 그 결과 최고의 마음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히에야세루(冷え痩せる)가 가능하며 재미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좋은 도구를 가지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은 도구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아무리 차노유에 능통하다 할지라도 좋은 것을 좋다고 감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다만 자만과 아집이 옳지 못한 것이라고 해서 향상되고자 하는 마음으로서의 자만마저 없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명언으로 옛사람은 자신이 마음을 이끄는 스승은 되어도 자만과 아집에 갇힌 마음을 자신의 스승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心の文, 村田珠光**


此道、第一わろき事ハ、心のかまんかしやう也、こふ者をは

そねミ、初心の者をハ見くたす事、一段無勿躰事共也、

こふしやにハちかつきて一言をもなけき、又初心の物をは

いかにもそたつへき事也、此道の一大事ハ、和漢之さかい

をまきらかす事、肝要肝要、ようしんあるへき事也、又、当時

ひゑかるゝと申して、初心の人躰か、ひせん物しからき物なと

をもちて、人もゆるさぬたけくらむ事、言語道断也、

かるゝと云事ハよき道具をもち、其あちわひをよく

しりて、心の下地によりてたけくらミて、後まて、ひへやせて

こそ面白くあるへき也、又さハあれ共、一向かなハぬ人躰ハ、道

具にハからかふへからす候也、いか様のてとり風情にても、なけく

所肝要にて候、たゝかまんかしやうかわるき事にて候、又ハ、かまん

なくてもならぬ道也、銘道ニいわく、

心の師とハなれ、心を師とせされ、と古人もいわれし也


**지금은 쓰지 않는 중세 일본어가 대부분이므로 의역에 의존해야 함을 밝힌다.





운동을 하다 보면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참 많다. 취미의 영역이 다 그런 편인데, 좋은 충고와 듣기 싫은 잔소리는 사실 한 끗 차이라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섬세하게 조절하기 어렵다. 예로부터 차를 다루는 일에도 이런 일이 많았다. 차를 도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 관계없이 자만과 집착을 경계했다. 물론 대놓고 적으로 선포했음에도 적군에 포섭되어 배교자가 되어버린 이들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돌려 말하면, 적이라는 것을 알아도 거기에 빠져들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니 얼마나 매력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란 말인가. 내가 성공했다는 자만과 이를 오매불망 쫓아 달리느라 분주한 집착의 마음이 그렇다. 대부분의 인간이 성공한 사람을 시기하고, 초보자에게 훈수를 두느라 마음이 바쁘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정작 나를 돌보거나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한다. 무라타 주코가 살았던 무로마치 시대 중세 일본에도 차가 유행하면서 그런 경향들이 대놓고 드러나 있었나 보다. 주코는 자신의 차노유를 배우기를 원하는 후대에 간결하고 단호하게 자만과 집착은 멍청하고 소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일종의 쿨함과 무미건조함이 유행이었던 시대에 떠돌던 말이 있다. “교토는 차노유 하기 좋은 곳이라 작년 유행한 차노유를 올해 내놓으면 비웃음을 산다.” 그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도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매년 유행이 바뀌면서 도구의 허식(虛飾)이나 과장이 도를 넘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러서는 이것이 왜 좋은지, 왜 비싼지, 왜 훌륭한지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오로지 값만 남게 되었다. 내가 왜 마음에 드는지, 그래서 왜 골라서 오늘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관한 생각과 감상은 사라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가 무언가를 추천해달라는 말이 참 싫었다. 이십 대 때는 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말이 싫었고, 삼십 대가 되어서는 좋은 차를 추천해달라는 말이 싫었다. 내가 당신에 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취향에 맞는 것이 무엇일지 어찌 안 단 말인가. 그건 마치 생각 없이 소개팅 자리를 마련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핀잔을 듣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사십 대가 되어보니 그런 질문 자체가 관심이라 고마워지긴 하더라.


주코는 말한다. “모르면 차라리 도구에 집착하지 말아라.” 무언가가 좋아지려면 많이 다루고 겪어야 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마찬가지다. 한 번 혹했다가 곁에 두어봤자 사용하지 않고, 만져주지 않고, 줄기차게 생각해 주지 않으면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는 법이다. 생각 없이 좋다는 말만 듣고 골랐으니 감동일 리가 없다. 유행이 번지고, 맛집 추천이 넘쳐흐르다 못해 더 이상의 신뢰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그럴 바에는 도구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자기다움이 없으면 다도란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다움이 없으면 남이 당신에게 뭐라 좋은 얘기를 하든 모두 잔소리일 뿐이고, 맛없는 집일 뿐이며, 돈 아까운 여행지일 뿐이다.






2025년 7월 22일,

정 다 인








당신을 보듬다, 소식지 구르다, rollingtea.net







위 그림

Wassily Kandinsky, Braunlich(Brownish),1931,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FMOMA)

https://www.sfmoma.org/artwork/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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