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한 식사 한 끼

<연필로 쓰기>를 읽고

by 롤린스

단문 위주로 구성된 글을 접할 때면 괜히 긴장하게 된다. 행간 사이사이 숨겨진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단문 특유의 빠른 호흡은 의도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마라톤을 뛸 때처럼 호흡을 조절해가며 읽어야 체하지 않고 글을 온전히 소화해 낼 수 있다. 물론 단문으로 가득해도 행간에 아무런 의미가 깃들어 있지 않은 책도 있다. 대부분의 단문 위주 책들이 이렇다. 단어 수준마저 그 깊이가 얕다. 서론부터 수준을 알 수 있기에 편한 마음으로 곱씹어 음미할 필요도 없이 후루룩 삼켜 먹으면 된다. 끼니를 때우는 느낌이랄까.


김훈 작가의 글은 다르다. 일산 호수공원을 걷다가 문뜩 든 생각을 원고지에 옮긴 것뿐인데도 이론서를 읽는 것만큼이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짧지만 단단한 문장 때문일 테다. 작가의 건조한 서술에도 문장과 행간에는 사색의 깊이와 함께 그 날의 분위기, 날씨, 냄새, 소음이 담겨 있다. 배변 관리가 국가 안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지점 근처 작고 허름한 민박집에 세월호 사건 취재차 한데 모여 잠을 청하는 기자들의 모습에서 바다 내음 섞인 그들의 쩐 내가 느껴졌다.


“똥을 퍼다 버리는 작업이 이틀이나 사흘 지연되면 마을은 똥에 잠기고 닷새쯤 지연되면 도시가 마비된다. 나는 인분 수거 작업자들이 일 못하겠다고 집단으로 아우성칠 때가 가장 무섭다. 이것은 국가안보의 문제이고 정권의 존망에 관한 문제이다.” – p.53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보다 작가가 그날 겪은 일에 대해 사색하는 글이 더 흥미롭고 긴장됐다. 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을 작가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자칭 “꼰대”의 눈에 비친 세상은 무뚝뚝했지만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때론 한없이 진지한 “꼰대”의 시선에 김훈 작가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박장대소했다.


“내가 눈을 기다리는 까닭은, 거리에서 연애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이 미끄러우면 여자 애인은 남자 애인에게 더 바싹 매달린다.*

*이것은 위험하다. 길이 얼어서 미끄러울 때는 팔짱을 풀고 걸어야 한다.” – p.307


<연필로 쓰기>는 작가가 즐겨 먹는다는 평양냉면 한 그릇 같았다.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을 음미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식사를 한 느낌이랄까.


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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