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2024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롤로 Jul 11. 2024

추억을 마셔요

가르텐비어 방문기

테이블에 작은 홈이 있어 그곳에 잔을 넣으면 맥주를 다 마실 때까지 잔을 시원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진 술집이 있다. 한때는 꽤나 유행하여 대학가 혹은 번화가에 많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 버려 유행에 민감한 곳에서 먼저 사라지고, 시 외곽이나 옛 골목에서나 간혹 만날 수 있는 술집이 되어버린 곳, 바로 가르텐비어다.


술집은 추억을 담아


친구들이 집들이 겸 놀러 왔을 때였다. 부지런히 마시다 보니 집에 사둔 술이 다 떨어졌다. 누구 하나 나가서 사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가서 먹자"라고 제안을 했다. 이 더운 여름 선뜻 마트에 가서 맥주를 사 오는 희생정신을 발휘하기 싫었던 우리 모두는 그게 좋을거 같다며 다 같이 나가기로 했다.


서울시 외곽 작은 번화가에서 어떤 술집을 가야 할까 하며 망설이다 가르텐비어를 발견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술집에 들어섰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인테리어와 메뉴와 감성이 우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자리에 앉아 맥주와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가게를 다시 둘러보고나니 마치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록의 네온사인 불빛과 테이블을 경계 짓는 작은 담벼락 위에 걸쳐진 가짜 식물들은 수많은 추억의 데이터들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각자의 술잔에 가득 담긴 맥주와 강냉이와 감자튀김이 보낸 추억 공급에 취해 우리는 휘청이기 시작했다. 수요 없는 공급처럼 쏟아지던 데이터들이 어느 순간 수요를 맞이했고 우리는 추억팔이에 정신을 잃을 때까지 데이터를 마음껏 소비했다.


그 시절 우리는 늘 휘청휘청 걸었던 것 같다.


쉬이 오르지 않는 성적, 만져보지 못한 장학금, 연애에 실패하고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녀석의 이야기, 원치 않았던 휴학, 열리지 않는 취업의 문에서 계속해서 좌절하던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서툰 연애. 그 당시 우리는 저 앞에 나온 하나의 이야기에도 매번 휘청이고 나자빠지고 골머리를 썩었다. 


돌이켜 보면 4년이라는 시간은 앞날을 준비할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뒤엔 무언가가 되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4년 뒤엔 합격증이든 사원증이든 무엇이든 하나는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 속에서 살았고 졸업과 함께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뒤처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우리를 휘청휘청 걷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의 고통 속에서 이리저리 휘청휘청 걷던 우리는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도 했고, 큰돈을 대출받아 집을 사기도 했고, 얼마 전에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걱정거리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며 벌컥벌컥 마시고 있지만 아마 그때와는 다른 삶의 무게를 각자 짊어지고 있으리라.


우리는 지금 그때와는 다른 걱정을 안고 그 시절의 걱정을 추억 삼아 미래를 향해 걷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후의 보루 서순라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