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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Jun 02. 2023

10월엔 남해로 가 소원을 빌자

남해, 보리암 홍보대사의 소원성취 일기

남해라는 곳이 있다. 서울 사람이 한번 가보고자 한다면 꽤나 큰 마음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곳, 마음이 멀다고 느끼는 것만큼 실제로도 먼 곳이라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아름답고 이색적이며 만족스러운 자연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 말은 남해에도 유효하여 남해는 그 말이 참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남해라고 하면 서해, 동해 같이 지도상에서 바다를 지칭하는 이름인가 싶지만, 남해는 실제 하는 지명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순천을 지나 한참 더 내려가면 섬을 다리로 이어놓아 섬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은 애매해진 섬 남해가 나온다. 지명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의 남해는 사실 뚜벅이 여행자가 여행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장소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버스와 렌터카 등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 혼자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 


남해를 처음 알게 된 건 경주에서였다. 경주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여행을 마친 여행자들과 밤을 새우며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여행자들이 소소하게 가지고 온 안주를 가지고 꽤 오랫동안 이야기 했다. 이야기 주제가 다 떨어져 갈 때쯤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혹시, 국내 여행 가봤던 곳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라고, 그때 한 여대생이 기다렸다는 듯 남해 이야기를 했다.


"저, 남해 보리암이요."


"남해, 보리암 처음 들어본 곳인데, 좋아요?"


"네, 엄청 좋아요. 보리암이 절인 데 가는 길에 바다를 보면서 등산할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 절하고 소원을 빌면 평생의 소원 하나를 들어준대요!"


"대박, 저 다음 여행으로 꼭 가볼래요. 추천 고마워요."


실로 아름다운 전설이 아닌가. 그렇다 남해, 특히 보리암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전설이 있기에 저 먼 외딴섬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방문할만한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 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전설을 가진 장소가 있으면, 응당 가보는 것이 옳은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낭만적인 전설에도 불구하고 남해는 만만치 않은 거리였기에 실행에 옮기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금요일 퇴근 후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남해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6시 출발, 장장 5시간에 걸친 긴 야행(夜行) 끝에 다다른 남해는 참으로 영롱했다. 시골 버스터미널이 늘 가지고 있는 나이트클럽의 불빛 덕분이기도 했지만, 하늘에서 쏟아질 듯 붙어있는 별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원래 그곳에 있어야 할 찜질방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게스트 하우스도 없던 시절이어서 부랴부랴 근처 모텔에 방을 잡아 잠을 청했다.


날이 밝고 본격적인 남해 여행을 시작했다. 첫 번째 여행지는 당연히 금산(錦山) 보리암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보리암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탈 때부터 당황했다. 티머니가 안된다. 현금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기사님께서 어디서 내리냐고 물어보신다. 


"보리암이요." 


"아, 그럼 금산 입구에서 내리면 돼요. 1300원."


오래전이긴 했지만 티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곳(지금은 있다), 그곳이 남해다. 우여곡절 끝에 금산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자 보리암 입구가 보였다. 보리암 입구에서 보리암까지는 또 작은 셔틀을 타야 했다. 구부러진 길들을 셔틀을 타고 꾸역꾸역 올라갔다. 셔틀에서 내려 30분 정도 오르니 드디어 보리암이 보였다. 경주에서 처음 보리암의 존재를 알고 '그곳에 가자, 그리고 소원을 빌자'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동안 늘 가슴에 품고 있던 소원 하나를 가지고 나는 드디어 이곳에 온 것이다.


기대 때문이었는지, 그날의 날씨 때문이었는지, 빈속에 버스를 타고 등산을 해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이었는지 산 꼭대기에 위치한 절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황홀한 경치를 눈에 담은 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실행하였다. 불전함에 작은 성의를 표하고 온마음을 다해 머릿속으로 소원을 되새기며 절을 세 번 했다. 남해행 버스를 타고 올 때만 해도 '꼭 소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고 나니 소원의 실현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절을 다 둘러보고 '상사암'과 '금산 정상'까지 시간을 들여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하산하여 저녁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튿날 남해 '바래길'과 '다랑이 논밭'을 마저 구경하고 짧은 여행을 마친 뒤 서울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떤 여행은 굉장히 좋은 인상과 추억으로 남아 그 계절이 될 때마다 따스한 온기가 되어 마음속에 되살아날 때가 있다. 내게 10월의 남해는 그런 곳이다. 그 여행 이후 남해 홍보대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남해를 추천해 주었다. 


만약 이루고 싶은 어떤 소원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거나 지루한 도시의 일상에 지쳐 끝없는 자연의 품이 그립다면 또는 넓은 바다 위에 작은 섬들이 점점이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거나 바다를 끼고 끝없이 펼쳐진 기다란 숲길을 한적하게 걷고 싶다면 여러분께 남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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