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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May 28. 2023

입춘

내가 캠핑을 시작하게 된 이유

살다 보니,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이별을 했을 때나, 무언가 굉장히 큰 노력을 들인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실패로 돌아섰을 때, 그럴 때면 마음이 마음처럼 되지가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잊어버리자 하거나, 다시 시작해 보자 하지만 그런 노력들을 침잠시켜 버리는, 한켠에 존재하는 어두운 것들이 내 온 마음을 집어삼켜버릴 때가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여 나를 계속해서 바쁘게 몰아치지만 한번 침잠한 마음은 쉽게 다잡아지지가 않아 점점 나를 어두운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만다. 그 어둠의 구렁텅이가 얼마나 괴롭고 해악한지 나는 이미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는 구실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어떨 때는 운동, 만남, 독서, 영화 같은 것들 중에 하나가 맞아떨어져 우물 속으로 내려온 동아줄처럼 나를 구렁텅이 위로 데리고 올라가기도 한다.


최근에 빠졌던 가장 깊었던 구렁텅이는 아마 오랫동안 만난 연인과의 이별 이후였을 것이다. 깊이를 모르고 침잠하던 나였지만, 이 또한 나를 살리고자 하는 어떤 반사작용 같은 것인지 한켠에서 빨리 이 구렁텅이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솟아올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더랬다. 그 다양한 방법 중에서도 동아줄에 닿은 것이 캠핑이었다.


어려서부터 무언가 마음이 복잡할 때면 산이나, 바다, 계곡과 강을 찾았지만 걷거나 눈에 담거나 하는 것이 다였지 이처럼 그 자연 속에서 밥을 해 먹고, 바람을 느끼고, 잠을 자거나 했던 적은 없었다. 놀랍게도 자연은 언제든지 상처 입은 마음을 품을 준비가 되어 있는 연고 같은 것이기도 해서, 그곳에 앉거나 누우면 어둡던 마음이 자연스레 밝은 빛으로 돌아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게다가 그 속에서는 이 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움직임이 필요하여, 그 움직임을 시행하는 동안에는 머릿속에 든 잡생각마저도 사라지는 좋은 경험도 할 수 있다.


내가 빠졌던 구렁텅이는 깊고 아득했지만, 구렁텅이마저도 포용하는 자연은 그보다 더 깊고 아득하여 끝이 없었다. 다만 구렁텅이를 이고 자연으로 갈 계기가 필요한데, 그 계기를 만들고 실행할 작은 움직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 몫을 실행한 나는 자연 속에서 어둠을 조금씩 덜어내고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사람들을 만날 용기를 얻어 냈다. 1년여 동안 그렇게 만난 산과 들과 바다와 석양,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내가 다시 구덩이 위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도 자연이라면, 그 자연 속에 하나 둘 발을 담근 사람들의 계기 또한 자연이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 계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감은 또 좋은 치료법이기에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 속에서 만난 자연 같은 사람들을 통해 또다시 밝은 빛으로 메운다.


어딘가 마음이 다잡히지 않을 때, 혹은 마음이 어떤 선한 의도와 부지런한 실행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어두운 빛일 때, 그럴 땐 산으로, 바다로, 들로, 강으로, 계곡으로 가보자. 그 속에는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드넓은 자연의 힘이 있기에, 누구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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