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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May 25. 2023

부처님 오신 날 조계사에서

조계사를 다녀온 패션 불교신자의 이야기

"종교가 무엇이요."


하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늘 '무교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를 거쳐간 종교가 꽤나 많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좀 부끄러울 때도 있다. 고등학교 때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를 다닌 적이 있고, 군대에서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으며, 불교 법명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이슬람교에 심취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내가 왜 이렇게 종교에 관심을 가졌는가 돌이켜 보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신의 존재 유무와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


신의 존재 유무는 '불가지론'으로 결론지었으며, 사후세계는 양자역학과 물리학 덕분에 '해당사항 없음'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패션 종교인으로서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였는지, 요즘은 누군가 종교가 무엇이요 하고 묻는다면


"제 마음의 종교는 불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믿는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모를 이 애매모호한 말로 불교에 긍정적인 마음을 표현하고 다니는 나지만 꽤나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종교들은 이미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불교만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나도 불교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교회를 가지는 않지만,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늘 절을 찾는다. 그리고 여행을 가서 가끔 시간이 남을 때 근처에 있는 절을 찾기도 한다. 왜인지 모르지만 절에 가면 복잡한 마음이 어느샌가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금 이른 시기에 조계사를 찾았다. 갖가지 소망을 담은 연등을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다 저 한편에 마련된 극락왕생 연등길을 보면 마음이 차분하고 아련해진다. 기복, 떠난 자를 향한 그리움, 형형색색 연등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바람에 흔들린다. 대웅전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불상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연등으로 만든 뽀로로를 보며 웃기도 한다. 영락없는 불교 신자처럼.


내가 언제까지 패션 불교신자로 활동할지는 모르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댈 곳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나마 나에게서 가능성을 조금 더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불교에 마음을 주고 싶다.


끝으로 부처님 올해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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