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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Sep 18. 202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는 왜 달리는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해 숨을 들이마시고 이내 폐 깊숙이 남아 있는 마지막 숨까지 몰아서 내쉰다.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공기를 다 내 폐로 몰아넣겠다는 듯 숨을 들이켠다. 그래도 숨이 부족한지 어깨와 가슴은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더불어 열을 식히기 위해 솟아난 땀은 이미 그 역할을 다했을 텐데도 계속해서 뿜어져 나온다. 더 이상 땀을 감당하지 못하는 옷은 흠뻑 젖어 몸에 질척 질척 달라붙기 시작한다.


"하아, 하아, 이제 그만. 나 이제 더 이상 못 뛰겠어."

"다 왔어, 좀만 더 가보자. 5킬로는 채워야지"


그게 내 첫 번째 러닝이었다.


5킬로 6분 30초.

온몸이 다 젖은 채로 편의점 의자에 앉아 스포츠 음료를 마시면서 쉬고 있다. 첫 번째 러닝을 마친 나의 몰골은 퀭한 눈과 너덜거리는 다리와 축축하게 젖은 몸이 말해주듯 러닝에 한참 뚜드려 맞은 듯한 모양새였다. 운동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유산소 운동이 좋아 이런저런 운동을 많이 해서 자신이 있던 나는 '달리기 그거 뭐 그냥 운동화 신고 달리면 되는 거잖아.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 같이 뛰자'라고 친구에게 말했고 결국 이 사달이 났다. 그리고 첫 번째 러닝에서 깨달았다. '유산소 운동의 최고 경지는 달리기다.'


5킬로를 뛴다면 보통 25분에서 35분 사이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달리기가 처음이라면 중간에 숨이 차거나 심장이 폭발할 것 같거나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아 걷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35분을 넘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몸과 시간은 정직하여 노력한 만큼 시간은 단축되고 심장은 차분해지고 숨은 덜 찰 것이며, 다리는 더 튼튼해질 것이다. 러닝을 처음 시작할 땐 그 생각이 중요하다.


5킬로 6분

6분대로 접어드는 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중간에 멈추거나 걷지 않고 6분대로 간다는 것은 꽤나 많은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호흡에 대해 알고 심장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쥐가 나지 않는 보폭에 대해 알아갈 때쯤이면 러닝은 이제 중독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쯤에서 운동화와 워치 등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6분은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난관이었다. 5분 59초와 6분 사이에서 꽤 긴 시간 밀당을 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그 1초대의 벽을 왔다 갔다 하며 한여름의 무더위와 짙은 단풍을 지나쳤다. 1초는 그런 시간이었다. 한 계절을 온전히 바쳐야만 비로소 안전하게 5분대에 진입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대에 진입하고부터 매월 말 자체 테스트를 시행했다. 매월 마지막 날을 자체적으로 기록 경신을 위한 날로 만들었고 마침내 5킬로 5분 50초의 기록으로 들어왔다.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5킬로 5분 30초

이제 목표는 5분 30초 안정권으로 접어드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이후는 한계 같은 게 느껴졌다. 넘어설 수 없어 보였다. 숨도 수월하고 심장도 안정적이었고 다리도 규칙적이고 활력 있게 앞뒤로 움직였지만 기록이 들락날락했다. 어떤 날은 5분 30초가 수월했지만 어떤 날은 그에 한참 모자라는 날도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저 옷 갈아입고 나와서 대충 뛰어선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어떤 사람에겐 굉장히 쉬웠을 그 벽이 나의 체격조건과 상황에서는 쉽사리 넘기 힘든 벽이라는 것을. 6분대를 벽으로 느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른 훨씬 거대한 벽이었다.


관리가 필요했다. 시간 관리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먹었다. 닥치는 대로 먹고 규칙적으로 잠도 잘 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록 경신은 관리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그런 방식으로 12월 총 13번의 러닝을 했고 평균 5분 26초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월말 테스트를 앞두고 있었다.


12월 28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비장한 각오로 옷을 챙겨 입는다. 워치를 차고 두꺼운 양말을 신는다. 긴바지를 입고 바람막이 안에 따뜻한 옷까지 한 겹 더 껴입는다. 영하 3도의 꽤 추운 날씨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충분히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천변에 도착하여 준비 운동을 한다. 손가락 머리, 발목 종아리 허벅지 허리 차근차근 몸을 풀고 열을 낸다. 준비 운동을 다 끝낸 뒤 결연한 마음으로 워치의 러닝 어플을 켜고 '시작'버튼을 누른다.


첫발을 내딛을 때의 그 느낌이 좋다. 서늘한 바람이 머리와 볼가를 스쳐 지나가고 동시에 코로 찬 공기가 들어온다. 바람막이는 사각사각 울고 지면에 내딛는 발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달리기 할 때 듣기 위해 모아둔 플레이리스트에 첫 노래가 시작된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모든 일들이 함께 일어난다. 마치 폭탄이 터지듯 모든 감각과 사건들이 일순간에 터진다. 그리고 다섯 발자국 이내에 터졌던 감각과 사건들은 다시 러닝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호흡을 고른다. 처음부터 심장을 무리하게 뛰게 만들면 안 된다. 보폭도 가다듬는다. 워치를 보며 페이스를 조절한다. 구간마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린다. 컨디션이 좋다고 초반에 무리하게 달려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달리고자 하는 다리와 심장을 과하게 억제하는 것도 옳지 않다.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는 그 중간 어디쯤에 나를 두고 계속해서 조절해줘야 한다. 코스의 중반쯤 도달하면 이제 점점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무거워지며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거린다. 한계인가라고 느끼는 순간이 500m 정도 이어진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고 뛸 때마다 몇백 번은 질문하는 '왜 뛰는 거야 이렇게 힘든데'를 또 반복한다. 놀랍게도 그 500m의 거리를 넘기고 나면 이제 찾아온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시간, 심장과 호흡과 보폭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 이제 욕심을 낼 때가 온 것이다. 나를 믿는 시간이다. 속도를 낸다. 저기 멀리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출발점까지 모든 것을 다 토해낼 각오로 달린다.


모든 것을 쏟아낼 것처럼 달리는 그 순간은 어떤 검은 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약 10분간 이어진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에 없기 때문이다. 그저 거친 숨과 눈가를 적시는 땀이 내가 그 10분의 시간을 견뎌냈다는 증거일 뿐 기억은 희미하게 사라져 있다. 10분 동안 어떻게 뛰었는지 무슨 풍경이 지나갔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되돌아온 출발선에서 몸을 구부리고 헥헥거리는 내 자신만 있을 뿐이다. 숨을 다 고르고 난 뒤 기록을 살펴본다.

5분 10초


기록이 남았다. 몇 달간의 이야기는 그렇게 짧은 숫자가 되어 나에 대한 믿음의 보답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처음으로 러닝이라는 세계를 알려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마, 접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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