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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May 22. 2023

와서 밥 먹고 가

가기 싫은 결혼식

"결혼식, 갈 거예요?"

"아마 가지 않을까. 지난번엔 파트너도 했고. 부장님이라 매번 챙겨주시니까."

"전 고민 좀 해보게요. 저도 가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같이 가요."


"무슨 결혼식이요? 누구 결혼해요?"

"몰랐어? 고 부장님 아들 이번에 결혼하잖아."

"아. 저는 안 갈래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 결혼식을 왜 가는지 모르겠네요."

"그래그래. 오지 마. 이제 1년 차인데 안 와도 돼."


그래. 나도 가기 싫다. 부장님 아들내미 얼굴도 모르고 그 아들내미가 내 결혼식에 올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부장님은 은퇴도 얼마 안 남으셨으니, 물론 연락드리면 내 결혼식에 오실 분이긴 하지만 내가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고, 은퇴하신 분을 다시 사회로 끌어내어 후배의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조금은 있다.


그렇게 간다고 해놓고서도 5월의 황금 주말을 잃기 싫은 아쉬움과 혹시 생길지 모를 중요한 약속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울질을 하던 그때, 부장님은 나의 고민에 종지부를 찍으러 오셨다. 늘 하던 아침 스몰토크인 줄 알았는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작은 봉투를 꺼내신다.


"이거 아들내미 결혼식 청첩장인데, 와서 밥 먹고 가."


"네...."


내 이름까지 고이 적힌 청첩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을 굳힌다. 핸드폰을 꺼내 5월 13일에 '고 부장님 아들 결혼식'이라고 캘박 한다. 그 순간에도 매정하지 못했던 나를 탓하고, 밥은 집에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굳이 강남 결혼식장까지 밥 먹으러 오라고 나를 부르시는 부장님을 탓해본다. 그리고 5월 13일에 고 부장님 아들 결혼식보다 '중요한' 약속이 생기지 않은 나의 일정이 또 못내 아쉽다.


생각해 보면 쉬운 문제다.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된다. 그럼에도 결혼식에 가게 되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애매한 관계. 내가 만약 부장님과의 관계가 '당연히 가야죠.'가 되는 관계라면 이런 고민이 없을 텐데 그런 관계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지가 있는 관계가 되면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저의를 생각하게 되고, 내가 그 사람과 그 정도로 친분이 있는가 망설이고, 그렇게 되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결국에는 결혼식을 가지만 마땅히 축하하지 못하는 그런 애매한 상황.


나는 이번에도 그렇다. 그런 애매한 상황은 결국, 결혼식 당일에 부장님을 뵙고 짧게 인사한 뒤, 신랑신부의 얼굴도 확인하지 않은 채 뷔페에서 우걱우걱 육회를 씹으며 황금 같은 주말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대화들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지난주에 다녀온 마땅히 가야 했던, 한없이 축하를 해주었던 친구의 결혼식과 비교해 본다.


"휴우-"


'나는 내 아들이랑 딸이 결혼하면 진짜 친한 친구들 빼고는 초대 안 해야지. 그리고 여러 부장님들, 웬만하면 자식 결혼식에는 초대하지 말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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