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치료하고 나도 치료하고
지난주,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일을 했다. 집에 있는 몬스테라를 손 본 것이다. 요 몇 달 동안 몬스테라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지난봄 분갈이를 했는데, 아무래도 왕초보인 내가 블로그 몇 개를 보고 시도한 게 잘못이었던 듯했다. 그전에는 작은 화분이라도 쑥쑥 잘만 크던 녀석이 분갈이 이후에는 성장을 딱 멈췄다. 새로 잎도 나지 않고 기존의 잎도 윤기를 잃은 채 끝부터 노랗게 서서히 말라갔다. 아무리 물을 줘도 소용이 없었다. 반면 뿌리는 계속 자라 화분 밑바닥 물 빠짐 구멍 사이로 삐져나오더니 끝도 없이 허공으로 뻗어 갔다. 마치 문어 화성인의 촉수 같았다.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어쩌나 저쩌나 몇 달을 두고보다가 지난 주말 집 근처 화원에 몬스테라를 가지고 갔다. 지금이 분갈이 철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처음 전화했을 때 화원 주인은 어이없어했다. 장마철에 분갈이를 문의하는 ‘무식한’ 손님이라니. 하지만 내가 일단 한번 살펴보기라도 해 달라고 계속 간곡히 부탁하자 마지못해 일단 가지고 와 보라고 했다.
예상대로 분갈이가 문제였다. 게다가 물도 너무 많이 줘서 화분 속은 완전 진흙 수준으로 질척질척했다. 아니, 그보다 화분 선택부터 틀렸다고 했다. 지적받는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예예’ 하며 들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보니 나의 식물 학살사를 풀어놓게 되었다. 고구마는 잎만 무성했고, 방울토마토도 실패했고, 카네이션은 말라 죽었고…. 화원 주인은 하나같이 초보한테 어려운 종류만 시도했었다며 딱하단 얼굴로 들었다. 그러더니 툭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계속 식물을 키우시네요. 보통 그렇게 실패하고 나면 안 키우던데.”
화원 주인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칭찬이라도 들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정말 그랬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계속 실패하는데도, 그 때문에 낙담하고 좌절하면서도 또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빵, 요리, 화분, 바느질처럼 여성스러운 걸 좋아했다. 하지만 희망 사항은 희망 사항일 뿐, 현실 속의 나는 손재주가 없었다. 그냥 없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빵은 구워도 부풀지가 않고 요리는 주부 경력 몇십 년이 되어도 여전히 칼질조차 서툴렀다. 키우다 죽은 화분이 부지기수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쯤 되면 진짜 손에서 음기라도 나오는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포기하지를 않고 계속하고 있으니 나도 나 자신이란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번은 지인에게 이런 나의 면에 대해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과감히 맺고 돌아서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짜증 난다고 했다. 그런데 도리어 그 지인은 나한테 ‘대단하다’고 했다. ‘늘 뭔가 하려고 한다’는 거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단지 계속하기만 하는 게 뭐가 대단하다는 걸까?
하지만 화원 주인이 말한 그 순간 갑자기 불이라도 켠 듯 이해되었다. 그때 지인이 말한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잘한다는 건 손재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나도 잘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잘하는 것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잘하는 건 남보다 앞서는 거라고 생각했다. 잘하지 못하면 실패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등수와 칭찬에 연연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걸 냉정하게 가르쳤다.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세계를 동경했고 그 때문에 실패와 좌절을 계속해서 겪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결국 ‘잘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예 일등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나니 차라리 편안해졌다. 그리고 잘하진 못해도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를 반복해서 해 왔더니 조금씩이나마 쌓이는 게 있었다. 돌아보니 그게 바로 나의 취향과 색깔이었다. 갑자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바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환희가 밀려왔다. 소리내어 웃고 싶을 만큼 기뻤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후련함에서 그랬을 거다.
화원 주인은 말끔하게 몬스테라를 손 봐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응급처지일 뿐이고 이대로 몬스테라가 살지 죽을지 보장할 수는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몬스테라를 싣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개운했다. 몬스테라와 함께 나도 치료를 받은 느낌이었다. 이제 몬스테라는 우리집 원래 그 자리, 초록 친구들과 함께 있다. 앞으로 몬스테라가 어떻게 될지는 몬스테라한테 달렸다. 나는 이 식물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을 함께 한 내 초록 친구가 나와 함께 오래 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