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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나보다 체력이 좋다

더위 피하러 헬스장 갔다가 생긴 일

by 크림동동

여름을 맞아 동네 평생학습관 헬스장에 등록했다. 왜 굳이 여름이냐 하면 정동향에 낡디 낡은 아파트 젤 꼭대기 층인 우리 집은 여름만 되면 오븐 마냥 덥기 때문이다. 특히 해가 비추는 오전이 제일 힘든데 해가 얼마나 집을 달구는지 안보다 밖이 더 시원할 정도다. 작년에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동네 헬스장에 잠시 다녔다. 마침 2주간 특가 이벤트를 실시하던 참이었다. 비록 2주였지만 제일 더울 때 시원한 데서 운동하고 샤워까지 싹 하고 나오니 그럭저럭 하루를 견딜 만했다. 그래서 올해도 같은 전략을 쓰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예 기간을 늘려서 2주가 아니라 폭염이 제일 심한 7, 8월, 두 달 동안 평생학습관 헬스장을 끊기로 했다. 더위가 오기 전에 미리 피하는 거다. 이만하면 꽤 영리하다 싶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첫날에 갔더니 머리가 하얗고 체구가 건장하신 남자 어르신 한두 분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풍경이었다. 이런 평생학습관 헬스장은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바로 주 연령층이 어르신이라는 거였다. 언젠가 어떤 브런치 작가님 에세이에서 말하기를, 평생학습관과 주민센터 헬스장은 몸짱 시니어의 놀이터라고 했다.(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다.) 60대조차 까마득한 어린이인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결국 다른 헬스장으로 옮겼다는 내용이었다. 읽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막상 내가 ‘그런 곳’에 가려니 조금 망설여지긴 했다. 그래서 또 전략을 세웠다. 아예 아주 일찍, 문 열자마자 다녀오는 거였다. 그때라면 사람도 많이 없을 테니 주변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 집중할 수 있을 터였다. 다행히 일찍 일어나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마다 훌륭한지 나 자신이 대견했다.

KakaoTalk_20250707_101241388_01.jpg 우리 동네 평생학습관 헬스센터

두 번째 갔을 때는 원래 보던 분들 이외에 할머니 한 분이 더 계셨다. 별로 운동을 열심히 하실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감히 이렇게 단정한 이유는 위로는 레이스가 달린 소매 없는 티셔츠에 아래는 면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화를 제외하고는 어디를 봐도 운동하겠다는 사람의 차림새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계속 그분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분이 사용한 기구를 내가 바로 이어서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할머니가 시티 드로우 머신에서 일어나신 뒤 그 자리에 앉아 기구를 잡아당기려는데 당겨지지가 않는 거였다. 분명히 좀 전에 이 자리에 할머니가 앉아서 헐렁헐렁 당기고 가는 걸 봤는데 믿어지지가 않았다. 당황해서 무게 추를 보니 평소 내가 익숙한 무게보다 한 칸 더 내려가 있었다. 레그 프레스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다리를 휙휙 움직이고 가셨는데 나는 안간힘을 써야 했다. 억지로 힘을 주려니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내가 괴력 몸짱 할머니를 만난 건지 아니면 체력이 떨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KakaoTalk_20250707_101241388_03.jpg 시티 드로우 머신

반성했다. 평소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또 실패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차림새에서부터 티가 날 거란 생각, 할머니 회원은 나보다 체력이 못할 거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걸까? ‘대체로’ 보니까 그러하다고, ‘통계상’ 그렇다고 내 편견의 이유를 댈 수는 있겠지만 결국 변명일 뿐이다. 운동복을 제대로 챙겨 입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와 같은 정보를 알려줄 뿐 절대 진리가 아니다. 세상 어느 것도 당연하고 확실한 것은 없다. 다시 한번 제멋대로 판단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더위나 피하려고 했더니 또 이렇게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역시 운동은 이래저래 좋은 것이다.

KakaoTalk_20250707_101241388.jpg 운동하러 가는 중. 초록색 비닐 안에는 헬스장에서 신을 운동화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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