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 처음 가 본 이야기
성심당 소문을 들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좀처럼 가 보지 못했다. 대전이 워낙 '노잼' 도시로 소문이 난 터라 휴가나 연휴 때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고, 이제 남편이나 나나 먹을 때마다 칼로리나 소화력을 따지는 나이가 되어 빵이 그다지 환영받는 먹거리가 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에 친정 부모님이 여동생 부부 학회에 따라 대전에 오셨다가 성심당에 들르셨다는 것이다. 70 중반을 넘으신 데다, 매번 '소화가 안 된다', '살찌니까 단 건 안 된다', '이제는 빵 같은 건 안 먹는다' 하시는 분들이 튀김소보루를 사서 그 자리에서도 드시고, 심지어 한 상자 사 갖고도 오셨다. 그리곤 '너무 맛있더라'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 말에 성심당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다시 일었다. 더욱 중요한 건 그동안 '빵 하나 사러 대전까지 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던 남편도 마음이 동한 눈치였다는 거다. 그래서 날을 정했다. 이번 일요일(이 글을 쓰는 오늘,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대전에 가서 성심당 빵을 사 오기로!.
그런데 세상 일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동안 노인네처럼 초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일찍 일어나는 건 걱정하지도 않았는데, 하필 몇 년만의 늦잠을 오늘 잔 거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6시 7분. 시각을 나타내는 숫자가 믿기지 않아 잠시 쳐다보았다. 서둘러 움직여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7시 40분이었다. 일단 성심당 본점을 찍고 내려가면서 좀 더 뒤져보니 주말 성심당 웨이팅은 어마어마했다. 심하면 2-3시간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성심당 DCC 점이 줄이 덜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성심당 DCC 점에 도착한 시각은 9시 40분 정도. 서울에서 딱 2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듣던 대로 이미 줄이 길었다. 하지만 미리 알아본 대로 웨이팅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다. 20분 정도 기다리니 입장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어떤 빵을 살지 머릿속으로 고르고 있는데 입구 앞에 붙은 푯말에 현재 빵 재고와 인기 있는 빵 입고 시간이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내심 찍어 두었던 '순수롤'은 11시에 나온다고 했다. 그걸 보자 앞의 커플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선 어떻게 하냐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옆에선 다른 아저씨가 핸드폰으로 "순수롤, 11시에 나온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입장 줄을 통제하는 아저씨가 '순수롤' 옆에 적혀 있던 '11시 입고'라는 글자를 지우며, "순수롤, 나왔습니다" 했다. 앞 커플이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순수롤은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성심당 DCC점에 입장하면 왼쪽이 케이크, 오른쪽은 성심당 빵, 이렇게 나뉜다. 어느 쪽을 먼저 돌든 관계없고, 계산 역시 양쪽에서 빵과 케이크 결제, 둘 다 가능하다.
매대에 진열된 수많은 빵과 케이크를 보면 없던 물욕이 생길 정도이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몇 가지만 신중하게 골랐다. 내가 고른 건 처음부터 찜해 뒀던 순수롤, 치아바타(맛 비교를 위해), 슈크림빵, 팥빵(남편의 최애), 감자빵, 쑥빵, 명란 바게트(이것도 인기가 있다고 해서), 야키소바 샌드위치(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남편 식사용, 사실 다른 샌드위치 종류도 많았지만 야키소바 샌드위치는 나올 때를 맞추기가 힘들다고 앞사람이 이야기하는 통해 그걸로 골랐다)'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성심당의 베스트셀러이자 가장 유명한 튀김소보루는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맞은편 '튀소정거장'에서 사야 하는 거였다.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기특하게도 내가 빵을 결제하는 동안 '튀김소보루와 판타롱 부추빵' 반반 세트를 사 두었다.
이렇게 빵을 구매한 뒤 튀소정거장 옆 맘모스 커피에서 커피와 함께 몇 개 먹었다. 물론 직원에게 먹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본 뒤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남편은 야키소바 샌드위치에는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잠봉뵈르나 고기 듬뿍 샌드위치가 더 나았을 것 같았다. 부추빵은 빵 안에 앙금 대신 만두 소가 든 형태였다. 간이 세지 않고, 하나 다 먹으면 든든할 것 같긴 했지만 맛있다 아니다 말하기엔 내 기준에서는 너무 새로운 맛의 조합이었다. 튀김소보루는 속에 팥이 들어 있어 깜짝 놀랐다. 그 정도로 나는 튀김소보루에 몰랐던 것이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튀김소보루가 일종의 고로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속 내용물이 고로케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단맛이 확 느껴져 놀랐던 것이다. 치아바타는 부드럽고 쫄깃했다. 한 개 가격이 3,500원인 걸로 생각하면 크기, 맛을 생각할 때 충분히 가성비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머지 빵들은 그 자리에서 다 먹어볼 수가 없어 일단 집에 가져온 후 냉동 보관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 가는 듯한, 최근에는 외국인에게도 핫플인 듯한 성심당을 우리 부부도 가 보았다. 빵도 좋아하고 나들이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오로지 빵만을 위해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을 달려보긴 처음이다. 또 오롯이 빵만을 사 가지고 오기도 처음이다.
사실 성심당을 가서 빵을 샀다는 것도 좋았지만, 성심당이라는 핫플에 나도 발을 디뎠다는 사실도 기분 좋았다. 나 역시 남들처럼 인증 욕구가 컸던 것이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는 이제는 대전 경제의 보물이 된 성심당의 수익에 작게나마 기여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이렇게 일요일의 충동적인 일탈은 생각보다 즐겁게 끝났다. 다음번엔 또 어디를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