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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Jan 15. 2021

정동진행 밤기차는 청춘을 싣고

밤기차 여행


  20대, 청춘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여행을 다녔다. 해외고 국내고 가리지 않고 쏘다녔었는데 밤새 기차를 탔던 여행은 색달랐다. 저녁 7시쯤 기차역의 출발지인 부산에서 출발해 종착역인 정동진까지 밤새 달려간다. 놀고먹다가 잠깐 눈을 붙이면 아침이 되어 정동진에 도착해있는 것이었다.


"밤기차 여행 정말 기대된다~~ 그체?"


"앉아서 자면 좀 불편하지 않겠나?"


"자긴 뭘 자? 밤새도록 놀아야지~!"

"그래~~ 왜 자는데~ 우리 밤새도록 맥주 마시고 노가리 까고 해야지~~"


"어? 어...."



 처음에 친구들이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을 가자고 했을 때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몸은 몸대로 고생하고 시간만 오래 걸리는 밤기차를 왜 타야 하나 했다. 기차 여행의 낭만을 느끼기에는 밖이 너무 깜깜해서 아무 감흥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미지근한 기분으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정동진으로 가는 무궁화호는 이미 정차되어 있었다. 출발점이라는 곳의 이점이었다. 같은 기차임에도 날렵하고 가벼워 보이는 ktx와는 달리 둔탁하고 무거운 고철덩어리 같은 무궁화호는 내가 살아온 날의 몇 배나 달리고 있어던마냥 낡고 오래되어 빛바래 있었다. 때가 낀 은색 발판을 딛고 올라 삐그덕 거리는 연결통로를 지나 딱딱한 은색 문을 밀어 열었다. 손잡이 위에 적힌 '미세요'가 없었다면 아마 당겨 열었을 것 같은 애매한 문이었다. 90도로 획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쿰쿰한 냄새와 난방의 열기에 기분이 확 다운되었지만 좌석 숫자를 체크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었다.  


 빳빳한 종이 승차권에 적힌 숫자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앉을 수 없었다. 세명의 여자에게 자리 배치는 은근히 민감한 문제였으니까. 다행히도 무궁화 기차는 의자 회전이 가능했고 두 좌석으로 묶여있는 의자의 뒷면에 서서 중간쯤 있는 패들을 꾹 눌러 밟았다.


"이거 왜 안 돌아가지?"


"더 꾹 눌러봐바~"


"이쪽이 아니고 저쪽으로 돌려야 되나 보다!"



 의자를 돌리려 낑낑대다가 어떻게 맞춘지도 모른 채 빙글 돌아간 의자는 마주 보는 형태가 되었다. 기차여행의 낭만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도시락을 까먹고 맥주를 마시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가볍게 마시기 시작한 맥주는 기차 안의 히터 열과 함께 취기를 올렸다.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며 열을 올렸고 차가운 맥주로 걱정을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마주 보고 밤을 지새운다는 건 관계가 두터워지는 느낌이었다.


 깊은 밤이 되니 하나, 둘 잠이 들었다. 기차 안의 다른 승객들도 약속이나 한 듯 잠들었고 삐그덕거리며 움직이는 연결음 소리만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얼굴만 비치는 깜깜한 차창밖을 쳐다보며 반복적으로 끽끽거리는 소리를 듣다 눈을 떴을 땐 어스름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청춘들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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