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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24. 2019

명함 없는 삶

그래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보다 지금 '명함'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누구라고 정의 내리기엔 다소 모호한 포지셔닝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명함을 만들지 못했다. 자꾸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를 소개할 때마다 그저 핸드폰 번호와 브런치 주소를 건네는 나의 아쉬운 맘을 그들은 알까.


명함을 가질 수 있었던 때는 어딘가에 속했을 때다. 조직 내에서 관리자도 팀장의 직책도 아닌 사원이었던 난 명함을 주고받는데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한 조직 내의 사람으로 소개한다거나 실무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연락하라는 무언의 신호를 그들에게 보냈을 뿐이다.


다섯 개의 명함을 가지고 다니다


지갑이 두둑해서 현금 보유량이 많은 부잣집 딸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얼마나 들어있을지 기대감에 가득 찬 동기들은 지갑 안을 살펴보다 더 놀라운 눈으로 지갑 안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올려놓는다. 내 이름으로 된 명함이 무려 다섯 개나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만 다니던 대학생이 무슨 명함이냐던 그녀들은 부잣집 딸이 아닌 능력 있는 여자라며 나를 추켜세웠다. 그 많던 명함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폐 휴지함으로 떠나보냈다. 대외활동 특성상 분기가 지나가면 기간이 끝나버린다. 나를 소개하던 그 매력적인 무엇들은 결국 이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두둑한 나의 지갑, 명함이 아닌 돈이었다면 조금 더 좋았을텐데...

진짜 조직이라는 회사에 들어가 첫 명함을 받았을 땐, 내가 진짜 뭐라도 된 것 같았다. 사명과 내 이름 석자가 박힌 허울뿐인 명함인데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자연스레 지갑을 열며 명함을 건넨다. 소속이 중요해진 건 명함 때문이었다. 더 나은 조직으로 갈 수 있다는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열쇠인 명함을 찾는 방법은 이직이라 착각했다.


휴지통으로 처박혀버린 나의 명함들


감동이 있는 물건은 좀처럼 버릴 수가 없다. 단 한 번이라도 내게 닭살을 돋게 했거나 눈물을 짓게 했던 모든 것들은 내 보물상자 안에 담겨있다. 참, 그 안에 더러 몇 개의 명함이 있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사람들을 보내준 그 명함은 버릴 수가 없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명함은 감동을 주는 무언가가 아녔다. 그저 감탄을 자아내거나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물건일 뿐. 사람들은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닌 명함 속에 포함돼 있는 나를 판단했다. 내 자체가 명함이 되고 싶은 난 가이던스가 될 예정이다. 개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자기실현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개인이 행복해지고, 또 사회적으로 유용한 존재(사회적 자기실현)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지도하는 사람이 바로 가이드를 주는 '가이던스'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글을 쓰고 싶은데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규직 직장인 대신 프리랜서로 일하기 선택했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불안하고 위태로웠지만 글을 쓸 땐 온전히 내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난 '선생님'이 되었다. 그토록 피해왔던 학교라는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지금 내 인생은 내 선택의 결과다.


꿈을 향한 길은 매우 혹독하다. 지금은 누구도 나를 증명해주지 못한다. 주체하지 못할 많은 양을 버렸던 그 많던 명함이 이젠 하나도 없다. 증명은 오직 본인이 할 수 있을 뿐이다.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듯, 꿈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나다. 끝까지 참아냈을 때 완벽하게 성공하는 사람보다 땅에 꼬꾸라져 현실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내 존재 자체가 명함이 되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허울뿐인 명함대신 진짜 명함을 만들래요.

명함이라는 틀 속에 나를 가두는 걸 원치 않는다. 기본적으로 나를 소개하자면 글 쓰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나아가 글을 통해 삶을 치유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활자 중독자로 살아가며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게 얼마나 동적인 활동인지 알려주고 싶은 연사기도 하다.


세상에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꾸 한 눈 팔게 된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당신의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지금은 어떤 감정인지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자꾸 읽고 쓰고 대화하고 싶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 자체가 명함이야'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날. 그때가 됐을 때 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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