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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Sep 26. 2019

혼자를 즐기는 법

따로 또 같이 여행하는 게 좋겠다

완벽하진 않지만 혼자였던 적이 있다. 예민하디 예민했던 사춘기 소녀는 군중 속의 고독을 처음 경험했다. 항상 군중의 중심에 있었다.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혼자가 무서운 열여덟 소녀


외로움은 갑자기 찾아왔다. 경험해 본 적 없던 낯선 느낌에 쉬는 시간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앉아있어야 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지만 모두가 나를 신경 쓰는 듯한 시선. 새 학기 때처럼 먼저 다가가 친구들에게 말 걸 수도 있었지만 혹여라도 뒤에서 내 얘기가 나올까 봐 몸을 사리게 됐다. 인간관계의 피곤함을 '열여덟 소녀'가 되어 처음 느꼈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사소한 걱정거리들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집에 가는 시간만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떼 지어 손을 잡고 걸어가는 같은 반 친구들을 볼 때면 고개를 푹 숙이거나 못 본 척 딴짓을 하며 지나갔다.


군중속의 고독. 너무 힘든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열여덟 소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어찌할지 몰랐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그녀들을 붙잡고 내가 무슨 잘못이 있는 건지 묻고 따지고 싶었다. 허공에 외치는 나의 질문을 대답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상처가 아물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십 대에 갑작스러운 그들의 연락은 날이 선 종이에 손을 벤 듯한 아픔을 주었다.


그래도 완벽하게 혼자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내겐 항상 '그'가 따라온다.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었던 둘은 혼자만의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를 즐기는 법을 몰랐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친구들이 신기했고,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위대해 보였다.


사람이 무서워진 스물 일곱


스물일곱이 된 어느 날, 진짜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을 할수록 사람들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어야 함에 지치기 시작 헸다. 매일 핸드폰을 들고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들어야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남자 친구의 연락을 받아야 했다.


스마트폰이 싫었다. 문자하고 전화받던 아날로그 시절이 그리웠다. 매일 울리는 카톡 소리와 동시에 스트레스도 눈에 보일 정도로 쌓였다. 주말 몇 번 스마트폰을 꺼놨다가 폭탄 메신저를 받았을 때 다 읽으며 허탈해하는 날 발견하고 또 자책을 반복한다. 만나지 않았음에도 너무 시끄러웠다.


만나지 않아도 시끄러웠다.


그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책 읽으며 쉬고 싶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사람에 지쳤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같이 가서 책을 읽자고 했다. 덧붙여 자신은 별개로 봐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서운해하는 그를 더 견디지 못하고 그 당시 이별을 고했다. 물론 다시 만나긴 했지만 시기적절하게 그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대로 떠나갔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책을 쓰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하던 김정운 교수는 돌연 은퇴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돌아온 그의 첫마디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고 답했다. 강연을 하면서도 '딴생각'을 일삼던 그는 사실 인간관계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얻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자각한 것이다.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던 그는 50대가 되며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따로 또 같이, 혼자를 즐기는 법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된 우리는 진짜 혼자의 시간이 부족하다. 프리랜서로 생활하다 보니 한 공간에서 숨 쉬는 일이 많아졌다. 일상적인 일인데도 촉수가 예민해져 서로 예민하게 인식하게 된다. 특히 남편이 누워 있는 게 궁금한 난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 마냥 '뭐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지던 말이 남편에겐 과도한 부담이었나 보다. 우린 주말마다 부쩍 다툼이 잦아졌다. 


싸웠을 때만 묵언수행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그 외의 시간은 여전히 함께 한다.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서로의 시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약속 같은 게 필요하다고 느낀 우린 색다른 여행을 계획하기로 한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던 질문에 나는 '혼자 여행하기'라고 답했다. 그 말을 주의 깊게 듣던 친구는 "혼자 여행하기인데 방법을 조금 색다르게 하는 건 어때. 남편이라서 어두운 밤에 돌아다니거나 혼자 자는 게 걱정되는 거 아냐? 그럼 그냥 낮에는 혼자 돌아다니 게 하고  밤엔 그냥 같이 자면 안 돼?"


따로 또 같이. 혼자를 즐기기로 합의했다. 가만히 머리를 대고 누워 하늘을 보면 중력을 따라 많은 이야기가 떨어진다. 위에서 던져주는 걸 받아먹으면 새로운 글감이 무의식 중에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여행은 익숙한 모습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획기적인 기술을 제안한다.


어디든 가보기로. 이제 곧 가을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있음에도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롭다고 느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렇듯 사람은 언제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외로움은 외부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정신 분석학자 H.S 설리번은 '론리니스(loneliness)'를 관계로부터 격리되어 혼자 있는 고통이며, '솔리튜드(solitude)'는 자발적인 선택으로 나다움을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즐거움이라 분류했다.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은 외로움에서 온다. 그 시간을 가졌을 때 불안하지 않으면 정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미 관계에 중독돼 있어 처음엔 꽤 어려울 것이다. 그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만 일단 나와 직면할 수 있고, 내 안의 나와 대화할 수 있다. 이렇듯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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