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예지 Aug 05. 2019

선생님의 이중생활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요가복을 입고 학원으로 가볍게 뛰어가던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자전거를 타던 학생이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한다. "어디 가세요~ 선생님!" 그의 질문에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간다. "그래. 자전거 조심히 타고 다음 주에 보자!" 이미 그는 내가 모른 척 하는 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요가복을 입고 가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약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예전에 글을 썼듯 난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출퇴근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나의 행동을 저 멀리서 지켜보는 학생이 있을까 싶어 단어 선택도 조심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의 제안으로 본격적인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글을 쓰던 월요일 오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몇 개월 전부터 요가 수련을 도와주시던 원장 선생님의 전화였다. "혹시 이번 주부터 일 해줄 수 있어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찌할지 모르고 나중에 다시 전화드리겠다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턱을 괴고 의자에 앉는다.


정말 글만 쓰고 싶었는데요


무척이나 불안하던 도중 반가운 전화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머릿속에선 계산기가 출몰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다른 일들과 자꾸 숫자를 비교해본다. 기존부터 내가 하던 글쓰기 분야에서는 그래도 시급을 높게 받으며 대우를 인정받았지만, 요가 초보 중 초보로 한 발짝 걸어간 지금 시기에서는 최저 시급을 받으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원장 선생님의 전화로 내 위치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이전에 홍보대행사에 다녔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를 만난다고 인식하는 게 나에게 조금 이해하기가 쉽다. 프리랜서 역시 몇 개월에 한 번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야 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는 자발성이 줄어들지만 프리랜서의 경우에는 좋고 싫은 일을 그래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 초반에는 '선택의 폭'이 좁은 탓에 회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선택의 폭이 좁다고 해서 좌절할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다. 싫은 사람 얼굴도 보지 않고, 억지로 시키는 일도 하지 않기 위해 회사를 나왔지만 이렇게 또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회사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자발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던 걸까. 뒤집어보면 돈을 벌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게 맞다는 걸 어릴 때부터 몰랐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덜 하기 싫은 걸 하잖아


시간을 조금 더 효율적이고 꼼꼼하게 쓰고 싶지만 또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여유롭게 향을 맡으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햇볕을 받고 싶을 땐 밖으로 나가서 볕도 쐬면 좋을 텐데. 아주 작은 욕구들을 조금씩 재쳐두기 시작하자 짜증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척이나 다행인 건 덜 하기 싫은 일을 한다. 예전에는 마음에도 없는 글을 써 내려가야 했다. 브랜드 홍보를 위해 없는 가치를 걸레 쥐어 짜내듯 해야 했고, 사람들이 관심 없는 기사를 조금이라도 읽게 만들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있어 보이는 제목을 써내야 했다. 지금은 다행히도 내가 할 수 있으면서도 덜 하기 싫은 일을 한다. 삶의 가치를 주제로 청년들과 토론을 하기도 하고 함께 글을 쓴다. 그리고 요가를 하며 자기 관리에 열 올리는 회원들을 만난다. 빼놓지 않고 운동하는 그들의 생활 습관을 보며 자기반성을 하기도 한다.


주말엔 무척이나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평일엔 앉을 자리가 있다


물론 프리랜서로 사는 우리 부부에겐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여유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것도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하루를 사는 직장인과는 조금 다른 시간이 돌아간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우리는 다른 것과 병행해야 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강의를 하기로 한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야 한다. 매일 다른 곳을 가고 그렇게 시간을 확인하며 움직이다 보면 이게 과연 맞는 일일까 생각하다가도 돌이켜보면 지금 이 일도 내게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다.


아마 선생님의 이중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축척되어 학생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삶에는 많은 가치가 있고 수많은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 그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이야기꾼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전 09화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