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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Nov 07. 2019

남편 뒷모습을 보며 애써 삼키는 말

꼭 해야만 하겠어,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면

역시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었던가. 그 사실을 행복주택에 살면서 매일같이 체감하고 있다. 부모님 집에서는 보지 못했던 진풍경을 매일 저녁마다 볼 수 있다. 신혼부부와 청년들이 대다수 거주하는 동 앞에는 점심과 저녁 시간에 오토바이가 적게는 두 대에서 많게는 세 대까지 세워져 있다. 그들과 반대로 우리는 결혼 초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정겨운 오토바이 소리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배달을 시켜먹지 않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재료를 사서 해 먹거나, 전화로 주문하고 직접 가져왔을 뿐.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 배달시켜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난, 그 맵고 엽기스러운 떡볶이 순한 맛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아주 가끔 남편에게 배달시켜먹자 조르는 편이다. 그때마다 남편은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배달비는 얼마 나와?

"배달비 아까우니까 할인되나 확인해봐 봐.


쓰면 아까운 돈이긴 하지, 그래


나의 필명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는 우리 두 사람의 의지가 담긴 낭만부부다. 낭만이라는 말랑한 글자 앞에 생존이라는 까끌거리는 말을 하기 정말 싫지만, 지금 우리 현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나와 남편은 예전에 잡아두었던 일이 충분해 그리 수입을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시간 앞에서 또 다른 수익처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자 진짜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여보, 진짜 몸은 자유로운데 정신이 자유롭진 않아. 돈이 또 다른 문제를 제공하는구먼.”

“그렇긴 해. 또 다른 일을 구해봐야 하고, 또 벌 수 있을 땐 바짝 벌어야 하니까.”


우리의 대화 성토의 장은 바로 침대다.


침대에 누워 딱 각자 몫만큼의 천장을 바라보며 넋두리와 신세 한탄은 그칠 줄 몰랐다. 난 계속 움직이기만 많이 움직이고 돈이 들어오진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반대로 남편은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해도 머리가 덜 아프겠다고 한다. 최근 남편은 부쩍 자주 두통을 호소했다. 엄마가 줬던 한 통의 타이레놀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몇 번은 참아보라 말하지만 얼굴 찡그리고 있는 그를 보자면 먹지 말란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여보, 어제도 약 먹었는데 오늘은 좀 참아봐.”

“나도 지금 참다가 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꺼내 줘.”


우리 부부 사이에서 한 사람 몫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처음엔 나도 불안해서인지 자꾸 그와 각자의 수익을 말하곤 했다. 근데 그에게 스트레스가 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싸웠을 때 압박하지 말라던 그의 말 앞에서 입을 꼭 닫기 시작했던 걸 그는 알고 있을까.


프리랜서로 일을 찾을 때 나와 그의 스타일은 부쩍 다른 편이다. 난 스스로 찾아 일을 만들어 그에게 통보하는 스타일인 반면, 그는 차근차근 일을 찾아보며 같이 상의하는 스타일이다. 전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다는 그의 방법이 좋다고 말하지만, 나 역시 반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전적으로 상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다는 사실이다. 상반된 둘의 스타일로 인해 부부가 되었어도 여전히 싸움은 그치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르바이트를 찾아보던 그의 말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낸 나였다. 시간적인 제약 외에도 경력만 받는 업종들에 지원을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다른 것보다 제일 빠른 건 음악을 만드는 거라 생각이 들었던 난 그냥 곡 작업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욱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아주 오래전부터 분명 컸던 그의 등이었는데.


문 밖을 나서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지쳐보였다. 그에게 느끼던 고마움을 잊고 있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의 등은 너무 커서 품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부담감때문인지 어깨가 처진거 같기도 크던 어깨가 조금 작아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는 일을 하며 새로운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 큰 압박으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매일 그에게 압박만 주고 있는 와이프임에 틀림없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건 나도 알 수가 없어

 

삶의 주체성을 추구하던 두 사람에게 프리랜서는 분명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기 싫은 일에 휘둘리지 않을 권리, 공감할 줄 모르는 상사에게 조언 듣지 않을 권리, 수동성이 답보된 그곳에서 우린 탈출했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내가 선택한 한 가지를 하고 있는데 속상함이 밀려오는 건 왜일까.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때쯤, <대리사회>를 다시 집어 들었다. 터무니없는 월급을 받아도 시간강사로 살기 위해 대리운전을 선택한 작가의 마음을 보고 나의 이런 감정을 이해하고 싶었다. 신기하게 여러 차례 읽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구절이 결혼을 하고 나서야 이해되게 됐다.


‘어쩌면 가족은 끊임없이 서로를 위한 대리로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우리는 너를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주체와 대리를 넘나 든다. 나는 아직 모든 가족을 주체로 두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아내하고든 아이하고든 조금은 더 많이 대화하려고 한다. 기꺼이 그들을 위한 대리의 삶을 살며, 그렇게 조금은 더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행위들은 오직 그 행위를 수행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 안에서만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던 한나 아렌트처럼. 아마 나도 남편의 선택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서로의 대리인이 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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