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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27. 2020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것 같은데

이제 함께할 사람이 딱 네 명이라뇨

작년 이맘때쯤. 막 회사를 퇴사한 친구와 회사 욕을 할 겸, 근황 토크를 할 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나 역시 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한창 초반 때였기 때문에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의 만행을 그녀와 끝없이 토로하고 있었다. 몇 차례의 이직과 퇴사로 몸과 마음이 지쳤던 그녀와 나는 쉬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분명 입으로는 쉬고 싶다고 말했는데. 좀처럼 쉴 줄 모르는 두 여인은 결국 새로운 일을 벌였다. 통 크게 우리는 창업 지원, 투자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시작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우리 둘을 뭘 믿고 5천만 원, 1억 원 그 큰돈을 투자하리오. 열심히 해 왔어도 그 큰돈을 투자받기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1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프리랜서로 막 1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나와 함께 지금 일을 지속해나가는 동료가 딱 네 명이 됐다.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건 내게 큰 위로가 됐다. 함께 성장하는 동료가 없다는 건 내게 큰 좌절과 마찬가지였다. 대화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나에게 같은 주제를 가지고 함께 공존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한 사업이 선정되고 차례로 여러 가지 일이 물 밀듯 들어오며 기존에 있던 동료들과 균열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프리랜서인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동료는 나의 절친들이었다. 그 둘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갓 서른이 된 우리들은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로 주요 요직을 맡고 있었다. 기획에서 하지 않던 실행과 운영을 도맡아 해야 하지만 우리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였기에 턱 밑까지 물이 가득 차 오른 상태였다.


균열이 내 탓인 것만 같았고, 외적인 균열은 내적인 균열도 동시에 일으켰다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매일 밤낮으로 눈물이 메마르지 않던 어느 날. 동료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5월 말쯤부터였다. 이렇게 지속하다가는 결국 모든 일을 포기해버릴 것만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팀이 조직된 경로를 설명하고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물색해보길 한 달. 바로 임금을 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동료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기획한 <내일로딩>을 시작했다.


내일을 로딩한다면서 정작 내 일은?


사실 내 일을 로딩한다면서 정작 내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획했던 것을 운영해야 하는 날 바로 직전에 운영계획안을 짜고, 바로 다음날 운영 담당자를 뽑는 방식으로 업무를 쳐내고 있었다.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업무를 진행해나가던 나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위로라고 밑줄을 쳐 놨던 구절이 있다. '다시 말해 집중해야 할 대상이 많아져서 집중을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타이탄의 도구들 저자 팀 페리스가 말했듯, 집중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았다. 촘촘하게 짜인 계획을 실행하기는 하나 의미나 뜻을 정리하지 못하고 리뷰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작업은 진정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의 내일도 모르는데 감히 누군가의 내일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내일로딩의 타이틀은 내일(my job)을 수집하고 편집해서 내일(tommorrow)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여러 궤적의 업의 경험이 있는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다양한 질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삶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 무슨 고민을 해 왔는지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물리적으로 일의 양이 많아서 허덕이고 있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첫 모임을 진행한 그 날.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그것도 세 명이나. 기획이 잘 부합했던 건지 아니면 우리의 활동이 궁금했던 건지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동료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활동이 끝난 이후, 용기를 내 그들에게 전화를 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요즘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멈춘 것 같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그 일을 해야 할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응원해주는 팬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는 게 또 다른 시련이다. 갑작스럽게 일이 취소되고 집에 앉아 작업을 하는 만큼 예전처럼 계획표를 짜서 정리하는 나만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요즘, 우리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동료들의 열정은 하늘을 찌르지만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일을 구조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게 보인다. 본인의 역량을 평가절하하며 작아지는 경향이 있을 땐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내지만 그 아이디어를 정리해내지 못할 땐 어떤 방식으로 제안할지. 모두 각자의 성향과 스토리 안에서 일을 잘 해내는 동료들임을 알기에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나 역시 제너럴리스트다. 무언가를 특출 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새로운 레퍼런스를 자꾸 찾아보고 참고한다. 이렇게 수집광이라고 불린다. 누군가는 내게 예시는 더 이상 그만 찾아봐도 된다고 말할 정도니까. 내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캡처를 한 사진들은 결국 나의 취향을 나타낸다. 그 취향들이 하나씩 모였을 때 나를 만들어낸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밑줄 쳐 놓은 모든 것들이 소중해서 쉽사리 휴지통으로 버릴 수가 없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미덕이었던 옛날과는 달리, 제너럴리스트도 각광받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스타그램에 본인의 여행 기록, 메모 기록을 올리던 마케터의 <기록의 쓸모>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듯, 나의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브이로그를 50만 이상이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특별함을 찾고 있듯 말이다. 서평 쓰는 법의 작가는 '진정한 제너럴리스트만이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고, 올바른 스페셜리스트만이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듦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짧은 회의는 너무 값지다. 다방면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 낸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레퍼런스를 찾아내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나가는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스페셜리스트로 발돋움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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