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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Mar 18. 2021

쓰는 행위는 OO이다

쓰는 걸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 어언 4년. 누군가는 행복한 순간을 카메라로 남기지만, 행복의 순간을 남길 때 제격은 바로 사각사각 써 내려가는 노트 아닐까. 나에게 그만큼 쓰는 건 행복이다. 그 행복의 시간이 꽤 오랫동안 멈췄다. 


공간을 채우느라 나의 시간을 채우는 작업을 놓쳐버렸다. 공간을 만들고 꾸미는데 집중하다 보니 공간 안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지 자꾸 묻게 됐다. 방문하는 사람들이 단조롭게 느끼면 안 되니까. 공간 안에 담기는 오브제가 중요했다. 하나씩 채우고 돌아보니 시간을 채우는 일을 놓치고 있었다. 단지 흘러가는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쓰는 행위는 멈춤이다


예전에 썼던 일기장을 펼쳐보면 자주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리고 나 자신이 참 안쓰럽다. 왜 이렇게 힘들 때만 펜을 들었을까. 세상을 원망하는데 이어 내 주변 사람들을 탓하다 온 기운을 쭉 뺐던 나날들. 세상에 나만큼 힘든 사람은 없다고 소리치는 나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에도 써 보면 어땠을까.


처음 방문한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한 독립서점. 햇살 이불을 덮은 고양이는 포근한 느낌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 두 문장을 다시 읽자,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가게 됐다. 행복했던 순간을 되감기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여기 있구나.


잠깐 멈추고, 나는 지금 어떤 감정에 집중하고 있을까?


쓰는 행위를 한다는 건, 나 자신을 위해 잠깐이나마 멈출 시간을 준다는 거다. 펜을 드는 순간, 우리는 생각한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종이보다 컴퓨터가 편해진 요즘. 종이에 한 글자를 써 내려갈 때도 심혈을 기울

쓰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건 나 자신을 위해 잠깐 동안 멈출 시간을 준다는 거다. 펜을 드는 순간 우리는 생각한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종이보다 컴퓨터가 편해진 요즘. 종이에 한 글자를 써 내려갈 때도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쓰는 행위는 공간에 틀어박히지 않는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느끼는 일종의 착각. 나이가 들고 내 세상 안에 갇혀버린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 경계하지 않으면 누구나 꼰대가 되어버린다. 특히 30대의 젊은 꼰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도 아마 공간과 시간을 스스로 경계해 놓았기 때문 아닐까.


쓰지 않고 머무르게 되면 시간의 흐름과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안에 얽매이게 된다. 나 역시도 쓰지 않는 순간 지금 있는 공간에서 사고가 정지되는 경험을 했다. 12월부터 몇 개월 동안 꾸준하게 쓰지 않고 억지로 쓰게 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이 두려웠다. 긍정적인 지점을 바라보기보다는 '의심'부터 하기 시작하고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하기보다는 혼자 단정 지어버렸다.


쓰게 되면 시공간을 쉽게 넘어설 수 있다. 물리적인 공간 개념이 해체되고 새롭게 구성되는 작업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콘텐츠를 통해 누군가를 연결하고 확산할 수 있는 네트워킹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을 모으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나의 콘텐츠로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쓰는 사람들은 능동적이게 된다


수동적인 사람들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가지만 능동적인 사람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 쓰는 사람은 능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내 마음과 감정을 언어화시키면 무언가를 실천하고 싶어 지기 마련이니까. 함께 글을 쓰는 동료들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쓰던 한 수강생은 아버지를 관찰하다 보니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동생과 아버지와 함께 처음 백화점에 간 날. '촌스러워서'라며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옷가게에 들어섰던 그는 나름 신나게 본인의 옷을 입어보고 골랐다고 했다. 딸내미들에게 양손을 끌려 다니는 내내 피곤하다고 핀잔 섞인 말을 하더라도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다고. 


쓰기 전에 아버지를 관찰하던 수강생은 그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나열했다.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그녀는 하나씩이라도 해보자고 시작한 게 아빠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 해보기.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일단 쓰면 답은 나온다. 시작하자는 마음을 먹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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