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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pr 14. 2021

처음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 날

그때 나는 왜 쓰고 싶었을까

처음을 떠올려보는 요즘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첫 마음을 떠올리는 게 제일 좋다는 어른들의 말이 자연스레 귓가에 맴돈다. 그들의 말을 곱씹으며 입술을 깨물다가 나오는 짭짤한 피맛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고. 유독 단맛을 좋아하지만 사는 건 단맛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짜기도 쓰기도 한 편으로는 싱겁기도 한 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닐까.


내가 구축한 세계는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내 공간을 구축했다고 할지라도 나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오픈' 돼 있는 곳이다. 누구나 올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카페인만큼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공간이다. 요즘 빈번히 있는 일이라면 내게 인터뷰를 의뢰한 이들이 공간에 자주 찾아온다. 새로운 사람이 세계에 들어온다는 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감사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던져 나를 낱낱이 파헤쳐주는 사람들이니까.


그 날은 분명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던 날이었던 것 같다


5년 전쯤, 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만나는 사람들이 똑같아지고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는 게 늘어날 때쯤이었을까. 영업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글을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회사에서 노트를 꺼내놓으면 선배들은 한 마디씩 던졌다. "쓸 게 뭐 있다고." "괜히 쓰지 마" 하지만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진짜 많았다. 


첫째, 유독 덜렁대고 잘 까먹는 편이었다. 책을 읽을 때도 한 권의 책을 끈기 있게 읽지 못한다. 그래서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곤 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기록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어떤 구절이 좋았는지, 구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좋았던 구절을 다시 내 방식대로 변형해보는 식이었다.



일도 마찬가지다. 선배들은 매일 일에도 '메뉴얼'이 있다 보니 그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방식 그대로 고수하는 그들 사이에서 기록을 하는 건 말 그대로 '사치'였던 것이다. 하나의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여러 면을 파악하고 이를 분석해보는 작업이 필요한데 나의 기록은 그야말로 시간낭비였던 거다.


둘째, 튀어나오는 욕을 잡아둘 수 있었다. 요즘 차를 운전하면서 무턱대고 속도를 내다가 저 앞에 방지턱이 보이면 브레이크를 밟는다. 나에겐 메모장이 딱 방지턱이다. 화가 나서 욱하는 순간이 왔을 때 잠깐 노트를 피고 연필을 잡으면 마음의 방지턱이 볼록 튀어나온다. 안에다가 와다다다 욕을 써 내려가면 분노의 질주하던 나의 감정의 속도는 점점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 날


그 날은 모처럼 혼자 점심을 먹었던 날이었다. 카페에 있던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책 제목.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모든 상황이 무감각해지는 상황에 처한 저자는 사람이 앞에서 죽어가도 밥 먹는 데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본인 역시 비인간화가 된 것 아닐까라고 서술하고 있었다. 



저자가 반문했던 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떠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있다면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갈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회사를 나왔고, 나는 과연 괜찮은 사람일까라는 확신이 없어질 시점에 결국 삶의 의미는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 빅터 프랭클은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매일매일 쓰고 싶었지만 뭐부터 써야 할지 몰랐다. 써 오던 건 매일 누군가를 보여주고 홍보하는 일뿐이었으니까. 나의 개인적인 서사를 누군가 읽어줄까? 그저 끄적인 이야기들인데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을까. 그래. 나는 매일매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은 매일 세문장 쓰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이 글은 [매일 세 문장 쓰기]를 시작하는 멤버들을 위한 헌정글이다. 이 주전부터 어떤 질문을 보내야 할지 한 문장씩 정리해보고 매주 질문들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어떻게 글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꾸준하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나에게 온전히 말을 다 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돌보고 싶어요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시도하고 싶어요.


순수해 보이지만 이면에는 절실한 마음이 숨어있었다.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좋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이 [매일 세문장 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쓰는 건 매우 능동적인 동작이다. 연필을 들고 펜을 드는 그 무게는 나의 몸무게와 같다. 나를 기록하는 걸 넘어서 자기 정리를 하는 게 바로 글쓰기이기 때문에 내 온몸의 정신을 담아 글을 써야 '조금이나마 나은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딱 20일 동안 우리는 매일 세 문장 쓰기를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떤 상황이 되든 우리는 문장을 쓴다. 그리고 그 문장 안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나의 몸무게를 온전히 담아놓은 그 무거운 노트를 함께 펼쳐보며 마지막 날 '나만의 방지턱'을 조금씩 만들어 놓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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