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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충작가 Sep 07. 2021

터키는 저도 처음입니다만 - 1화

안탈리아, 안탈리아, 안탈리아

 터키를 가로로 누워있는 바게트 빵이라고 생각해보자.(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그런 다음 그 먹음직스러운 바게트에 가상의 십자가를 긋고(일단 긋자.) 4 사분면의 바깥쪽 어느 지점을 생각해보자. 그곳 어딘가 지중해 인근의 비옥한 땅이 우리의 첫 목적지다.

아름다운 유적들과 장엄한 올림포스산, 그리고 지중해에서 가장 긴 해수욕장을 가진 휴양도시, 안탈리아.

멀리 보이는 올림포스 산과 2km의 길이를 자랑하는 콘얄트 비치
하드리아누스 아치와 안탈리아 구시가지의 멋스런 유적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11시간여를 날아, 다시 터키 국내선을 갈아타고 1시간 반을 가야 닿을 수 있는 안탈리아.

 하지만 우리 여행 첫날의 여정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안탈리아 공항에서 짐을 찾자마자 다시 트램에 의지해 숙소로 향했다.

20여분 남짓 지났을까, 트램이 안탈리아의 관광명소가 모여있는 '칼레이치'구역에 들어서며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오빠, 이제 얼마 안 남았지?”

“응, 거의 다 왔어.”

구글 지도는 도착까지 도보로 15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는 20kg이 넘는 캐리어를 끌고 걸어갈 차례.

우리가 지나간 길에는 믹서기로 얼음을 가는 것 같은 캐리어 바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시가지의 울퉁불퉁 풍화된 돌바닥은 그렇게 지친 여행객을 맞이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 저녁 11시.

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기다려준 고마운 여자 사장님 덕에  체크인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다.

곧이어 우리가 안내된 곳은 아담한 정원이 내다보이는 오래된 건물의 1층 방이다. 낡은 검정 철제 자물쇠를 열어 숙소에 드러서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아, 드디어 도착이다.”

안탈리아 국제공항에 착륙 중 창밖 너머 흔들리는 야경과 안탈리아 올드타운(칼레이치)내에 위치한 숙소의 입구

 우리 숙소의 호스트는 네 명의 고양이 집사와 떠나는 날까지 그 숫자를 헤아리지 못한 고양이들이었다.

여행 이튿날 새벽, 어딘가 민방위 알람과 닮은 구석이 있는 아잔 소리(여행 막바지에 가서는 들리지 않으면 어딘가 서운했다)에 잠을 뒤척이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마당에는 아기 고양이들이 서로를 쫓고 쫓는 놀이에 한창이다. 그들을 가로질러 숙소의 아담한 식당 겸 로비로 들어서니 호스트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귀나이든, 알카다스"

(좋은 아침입니다, 친구들)

 볼때마다 따듯한 안부인사를 건네던 친근한 남자 사장님과 가끔씩 물총으로 버릇없는 고양이를 혼내시며 웃음이 매력적이셨던 여자 사장님이다. 두 분과 아침 안부를 주고받다 보면 어딘가 익숙한 아시안의 얼굴이 비치는 묵묵 하지만 친절한 종업원 두 분이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신다. 담백한 올리브빵과 여러 종류의 치즈, 짭조름한 토마토 오이 조림, 그리고 따듯한 커피와 달달한 오렌지주스다. 비로소 여행을 떠나온 것이 실감난다.

아담한 프라이빗 정원과 한켠에 마련된 숙소 식당

 여담으로 지금의 터키인들이 터키 땅에 살기 시작한 것은 5백 년 정도가 됐는데 이들의 뿌리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으로, 뿌리를 밟아 올라가다 보면 어쩌면 우리 민족의 먼 선조들과도 연이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들의 생김새에는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이런저런 상상과 맑고 단 과일주스를 함께 먹고 있으면 숙소의 숨겨진 호스트, 고양이들이 찾아와 방문객들을 염탐한다. 안탈리아 여행 막바지에야 꼬리를 우리 다리에 슬쩍 묻혀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제법 낯가림이 있는 호스트들이다.

숙소 터줏대감 고양이
아침 산책길의 칼레이치, 이른 아침이라 거리가 한산하다


 안탈리아는 여유가 있다. 특히 동물들이 그렇다. 고양이와 대형견들은 미신과 복날 건강식으로 소비될 걱정이 없기 때문에 한가롭게 거리를 돌아다닌다. 아침 산책길과 저녁식사 후 데이트 길에 마주하곤 했던 이들은 오랜 시간 한 마을에서 살아온 어르신 같았다. 이들은 식사 후 좋은 자리에 앉아 여행객들을 살핀다. 우리가 먼저 다가서도 피하지는 않지만, 되려 살갑게 다가와 먼저 말 걸어 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그들의 구역을 존중하고 그들은 터줏대감으로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이런 적당하고 기분 좋은 유대가 안탈리아 골목과 교차로와 식당들 앞에 스며있다.

아기 고양이는 못 참지

 시오노 나나미와 콜린 매컬로 덕에 고대 로마문명에 빠져있던 나에게 안탈리아 시립박물관은 빼놓을 수 없는 여행코스였다. 이런 내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듯 그녀도 안탈리아 여행 첫날의 목적지로 이곳을 먼저 제안해줬다. 숙소에서 걸어가기엔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기에 안탈리아 올드타운을 감싸듯 이어진 구식 트램*에 몸을 싣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앞에 서술한 트램(메트로)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공항을 이어주는 용도, 이번에 우리가 탄 구식 트램은 구시가지와 인근 관광지를 이어주는 용도다.)

터키에 왔으니 일단 젤라토 하나 먹고 가자
안탈리아 박물관으로 향하는 구식 트램


 박물관에는 영어 오디오 가이드가 준비돼있었지만 우리는 조용히 박물관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남기는데 집중했다. 작년 이맘쯤 떠났던 로마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옮기는데 그친 바티칸 투어보다 늦은 산책길에 조용히 지켜봤던 포로로마노의 모습을 더 오래 기억했던 우리였기 때문이다.


가슴이 웅장해진 역사 애호가

 12개 전시관에 나눠서 전시된 유물들은 선사시대부터 시작해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상과 올림포스 12 신 상,  비잔틴 제국의 주화까지 다양하고, 그 숫자 또한 소규모 휴양도시의 박물관 수준을 뛰어넘는다. 인근의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같은 고대도시의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모아놓았다고 하는데, 그 중심에 위치한 안탈리아라는 도시가 얼마나 번영한 곳이었을지 상상해본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휴양을 즐겼고 더 지나서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도 다녀간 이곳이 유명 관광지였던 것이 하루 이틀일은 아닌 것이다.

안탈리아 박물관의 여러 유물
박물관을 제집처럼 쓰는듯한 동물들
박물관 내 정원에도 볼거리가 다양하다


 여행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

안탈리아에는 터키 하면 떠오르는 케밥부터 시작해 치즈가 잔뜩 올려진 해산물 요리, 맛과 양을 다잡은 수제버거,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파스타 요리들, 그리고 너무나 신선한 과일주스들이 준비되어있다. 관광객들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그리된 것인지, 웬만한 음식들은 가리지 않는 우리라서 그런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외국 음식 특유의 위화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양고기 특유의 향에 취약했던 그녀는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다양한 음식들과 신선한 과일들
하나 주기전까진 안 떠날 기세였던 아깽이

 잠시 가격 이야기를 하자면, 숙소 주변은 안탈리아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 물가가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큰 맘먹어야 즐길 수 있었던 스테이크나 랍스터 같은 요리들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당시 터키 리라 가치의 폭락으로 맛본 일종의 '돈 쓰는 맛'이었다. 가격 걱정 없이 메뉴를 주문하는 여유는 한국에서 누리기 힘든 사치기에 우리는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행 메이트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안탈리아에서의 이튿날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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