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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May 16. 2020

가끔은 아픔을 나누는 것도 괜찮아요, 2018



 요가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렇게 요가를 찬양하는 게 창피하기도 하지만, 고백하건데 요가가 좋다. 주의가 산만하고 완벽한 외향형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살았다. 그래서 요가라는 운동은 나와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운동을 좀 해야겠어, 요가는 어때?'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 '너랑은 안 맞아. 백 프로.'라고 했다. 이러면 또 '예전'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도대체 어땠길래?
한 가지를 오래 못하고 집중력이 짧았다.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을 선호하고 일주일에 8번을 술을 마시는 타입이었다. 요가 같은 게 어울려 보일 리가 만무했다.

서른이 넘어서 나는 완벽한 외향형도 내향형도 아닌, 그 중간에 어중간하게 끼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정적인 운동, 그러니까 요가가 굉장히 잘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가를 시작하거나 끝낼 때는 가만히 누워있는다. 온몸에 힘을 빼고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를 모두 늘어트린다.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는 종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가 좋다. 신선놀음이란 게 이런 걸까. 매일 이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요가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맥주를 마시고, 수영을 하고, 책을 본다. 일주일째 같은 패턴으로 오전 시간을 보낸다. 고난 역경, 같은 것들을 늘 여행의 테마로 삼았던 내가 비싼 호텔에(내 기준에 3만 원이 넘으면 비싸다.) 택시를 타고 다니며 (택시비도 보통 2천 원을 넘지 않음 ) 웬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잉여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사의 손아귀 힘이 너무 셋던 건지 마사지를 다 받고 나니 뼈가 다 으스러진 느낌이라 속이 울렁거리면서 갑자기 컨디션 난조가 시작되었다. 역시 호사를 누리기엔 나는 길바닥 체질인 건가.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나이트 바자로 가서 어제 먹고 싶었던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 식은땀이 났지만 맛이 좋았다.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비가 오니 아시아인들은 호들갑을 떨며 부산스럽게 없어졌고 서양인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식사를 이어갔다. '조용하고 좋네, 좀 오다 말겠지' 하면서 비를 맞고 새우를 뜯어먹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져서 나도 자리를 떴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기념품도 좀 살 계획이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식은땀이 나고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왜지...

그렇다...

마사지를 받고 아픈 상태로 덜 익은 해산물을 먹었을 테고 비까지 맞아버려, 어딘가 아프기 시작한 거다. 택시를 잡아타고 급하게 호텔로 왔고, 밤새 식은땀 흘려가며 먹은 해산물과 콜라를 다 토했다. 친구는 그 사이 응급실을 검색하고 대사관에 전화할 준비까지 했다나 뭐라나 (고마운 걱정충)
친구가 다음날 그런 말을 한다.


"너는 혼자 살아서, 아플 때 혼자 이겨내는 법을 아는 것 같아. 나였으면 엄청 당황하고 힘들어했을 텐데, 혼자 가만히 누워있는 것 보고 혼자 아픈 것에 익숙해졌구나 생각했어."


나는 정확히 21살 때 독립을 했다. 독립이라기엔 뭣하지만, 걸어서 5분 거리의 대학교(정확히는 미대 건물 5분 거리) 앞에서 엄마가 구해놓은 자취방에서 언니와 함께 자취를 시작 했다. 엄마! 나 아프니까 빨리 와줘! 하면서 부를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가정이 있는 언니를 불러낼 수도 없는, 철저히 혼자인 생활을 10년을 넘게 한 나는, 아프면 그저 혼자 버틴다. 혼자 엉엉 울기도 하고, 혼자 배를 움켜잡고 응급실을 가보기도 했다. 그래서 진통제, 상비약은 늘 침대 곁에 둔다. 서러울 때도 많았지만 익숙해진 지금은 이게 편하다. '나 아프니까 좀 챙겨줘..'라는 말을 자주 해본 적이 없다. 아플 때,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로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괜히 고민을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내 걱정에 괜히 뒤척일까 봐,

"도연아 그런데 말이야, 아플 땐 나 아파. 내 어깨 좀 두드려줘..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고, 누군가가 날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덜 아프고 또 괜찮아지기도 하거든."

조금은 내 슬픔이나 아픔 같은 것 나누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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