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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May 22. 2020

고립된 삶이 그리운 날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네 답장을 받고 역시 채리와 교환일기를 쓰기 잘했다고 생각했어. '너는 또 그렇게 다음에도 그렇게 할 거라'는 말에 꽤나 큰 위로를 받았거든. 네 말이 맞아. 이렇게 백번 천 번을 다짐해도 나는 또 그렇게 할 거야. 난 그렇게 누군가에게 또 기대를 품고 이성보단 감정적으로 행동할 사람이니까. '나는 원래 그래, 그러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라는 부정적 의미가 아닌 나의 이런 모습을 좋아하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이 좋아서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또 나는 관계에 있어 마음을 쓰고 다치고를 반복하기로 했어. 마음이 가벼워졌어 :) 다시, 나답게 으쌰 으쌰 살기로!


너는 파나마에서 새로운 가족들이 생겼을 꾸려 살면서도 외로움을 문득 많이 느끼겠지? 내 가족을 곁에서 안아줄 수 없다는 일이 얼마나 외로울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통영에 머무를 시절, 자발적 유배를 하면서 관계에서 한걸음 떨어져 지냈지. 그땐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밥벌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거든. 매달 얼마쯤 생기는 돈으로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계획하면서 곁에 있는 강아지 한 마리와 매일 무엇을 먹을지만 생각했어. 눈을 뜨면 이불 빨래를 하고, 손님에게 조식을 대접하고 청소를 하고 바닷가를 거닐며 하루를 마무리했어. 그런데 일 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빨리 사회로 돌아오고 싶더라고. 연애도 하고 싶고, 다시 열심히 돈도 벌고 싶다고 생각했어. 꽤나 외롭다고 느꼈던 것 같아. 관계에서 멀어지면 사람들의 온기가 그립고, 또 사람들 속에 있으면 혼자 고립된 삶이 그리워져. 언제나 삶은 발란스 게임인 것 같아. 발란스를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의 열쇠가 아닌가 하고. 다시 세속적인 삶이 아닌,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욕심 없는 자유인의 삶이 그리운 요즘이야. 이 그리움도 언제나 그렇듯 덜 바빠지는 날엔 훌쩍 떠나기도 하고, 낯선 곳을 걸어 다니며 충족할 수 있겠지. 어서 입국 금지가 풀려야 할 텐데...(기승전 여행)


아직 생선작가의 신간을 읽지 못하고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있어, 지난달에 읽으려고 사둔 책을 아직 다 못 읽었거든. 어제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노인과 바다'를 끝냈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에세이보단 소설을 많이 읽어.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거든. 소설은 거짓이고 꾸며낸 이야기라 진실이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소설이 어쩌면 더욱더 내밀한 진실과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에세이를 쓰다 보면 나 자신을 조금씩 포장하고 감추는 경향이 있는데, 소설에서는 화자가 나이지만 다른 이름과 성격과 성별로 나를 감출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솔직하고 가감 없이 글을 쓰게 되거든. 기회가 된다면 채리도 가볍게 이야기를 써보는 걸 추천해 :) 오늘은 너의 추천 책인 '아무튼, 술’을 읽어보려 해. 다 읽거든 또 즐거운 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자.


너 김치 담은 거 좀 나눠달라고 하고 싶을 만큼 비주얼이 좋더라? 맛도 그만큼 좋았는지 궁금하다. 그럼 오늘도 나를 위한 행위를 하며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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