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너의 블로그 이웃이자 독자가 파나마로 이주를 오다니 그리고 집에 초대를 했다니!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느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마치 옛날 옛적 일처럼 느껴지는 때에 신선한 소식이로군! 파나마로 이주를 온 분도 친구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 너를 만나게 되어 즐거울 것 같아.
너와 나도 블로그를 통한 인연이었는데 그땐 어쩐 일인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이 별로 귀찮거나 피곤한 일이 아니었나 봐. 보통의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새로운 친구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오히려 옛 친구들과의 만남 횟수가 줄어드는 타입의 전형적인 인싸형 인간이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곁에 있는 사람이나 잘 챙기자.'란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를 알게 되더라도 경계를 많이 하고 마음을 풀어헤치지 않는 편이야. 그런 이유로는 사람한테 너무 큰 기대를 했고, 그러다 보니 실망을 반복했기 때문이겠지만 사실은 내 고질병인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해.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는 꽤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이라 자주 못 만나는 친구들을 월화수목 금토일 돌아가면서 만나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니 말이야. 그래도 우리가 함께 여행을 했던 2017년엔 에너지가 좀 남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여행까지 가고, 그 덕분에 너와 중호라는 중요한 친구들을 사귀었으니 얼마나 행운이었나 몰라. 그러고 보면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란 말은 진리인 것이지!
남자 친구는 그사이 무사히 퇴원을 했어. 입원해있었던 병원은 세종대학교에 있는 스포츠 재활센터(?) 같은 병원이었는데 밥과 반찬이 얼마나 잘 나오던지, 병실에 TV도 크고 깨끗하고 쾌적해서 남자 친구는 퇴원하기 싫었는데 의사가 퇴원하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해서 결국 퇴원을 했어. (ㅋㅋ) 냉장고에 든든한 김치 곁들인 국밥과 장조림이 상차림으로 올라오는 희망은 이루었나 모르겠네.
이번 주부터 서울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행되어서 요가원도 문을 닫고 출근하던 학원도 휴강을 하게 되었어. 종강을 5일 앞두고 휴강이 돼버려서 (종강을 하고 나면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요가원까지 문을 닫으니, 겨우 부여잡은 일상의 루틴이 또다시 무너져버렸어. 몇 주동안 미치도록 비만 오더니, 장마와 태풍이 그치고 나니 또다시 코로나. 한국은 희망과 절망의 경계를 계속 넘나들며 조마조마한 매일을 보내고 있단다. 외출마저 못했던 지난 몇 달간의 파나마를 생각하면 서울은 불행 중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우리가 편지를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다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언젠가'라는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참 슬프고 말이야.
요 며칠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나는 주로 모든 시간 글을 썼어. 이번 주 할당량을 다 채우고 오늘 시간이 좀 남아서 빨리 너에게 답장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어. 네가 알려준 이외수 아저씨의 말처럼 태양과 희망에는 임자가 없으니 이번 주는 희망을 마음껏 꿈꿔봐야겠어.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아시아나 항공의 광고를 봤거든. 모두 다 힘들지만 항공사들도 위기를 맞은 지금, "모든 여행이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듯 우리 곁을 떠난 여행도 돌아오길 바란다"라는 광고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아서 울컥하더라. 우리 곁을 떠난 여행이 얼른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희망을 품으며 이번 주도 희망을 요기 나게 나눠 써 보자.
그럼 이만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