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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Aug 10. 2021

나를 사랑하는 나에게. 런 온 2020

드라마 런 온 (Run-On) 극본 ㅣ 박시현 작가



"내가 사랑한 것 중에 왜 나는 없을까"  

6화 명대사


요즘 영 볼만한 드라마가 없다. 통쾌한 모범택시도 재미있지만, 너무 잔인하고 또 아무리 콘텐츠지만... 하고 눈살이 찌푸려져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다. 빈센조도 재미있지만 배우들의 연극톤 연기들이 좀 부담스러웠고,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재미있지만, 소아과 병동에서 아이가 아파 누워있는 걸 도저히 보기 힘든 나는 역시 로맨스 드라마가 체질이다. 오랜만에 판타지나 장르물이 아닌 드라마 적인 드라마, 대사가 맛깔난 드라마를 만났다. 


극 중 여주 오미주(신세경)는 부모가 없어 보호시설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얼굴이 더럽게 예쁘고(이건 어쩔 수 없는 드라마) 심지어 머리도 좋아서 무려 번역과 통역을 하는 능력자다. 학창 시절엔 가난하고 부모가 없는 일이 절망적이고 미래가 캄캄한 지옥 같겠지만 그래도 지만 잘하면(?) 밥은 안 굶고 잘 살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맘에 든다. 반대의 예를 들자면 나의 아저씨의 지안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주 안 좋은데 성인이 되어서도 심리적, 성격적으로도 온전치 못하기에 드라마 전체 분위기가 어둡고 우울한데 반해, 런 온은 여주의 성장이 굉장히 올바르고 밝고, 꽤나 자존감이 높은 캐릭터라 드라마의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고 심지어 활기차기까지 하다. 남주 기선겸(임시완)은 너무 잘생겼는데, 재벌에 국대 육상선수. (쓰고 나니 완전 드라마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연민이 없는 캐릭터다. 나는 다 괜찮고 남은 안 괜찮으면 안 되는. 극 중 아버지의 성격이 나만 좋으면 가족뿐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하며 사는 류의 인간 빌런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혐오하고 환멸 하며 생긴 반대의 성격일 수도. '런 온' 이란 드라마가 특히나 마음이 들었던 건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계속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해서였다. 어쭙잖은 위로도, 작위적인 해석도 없이 센스 있는 대사들로 끊임없이.


나를 사랑해줘. 그것도 제대로.




"네 탓하지 말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남 탓부터 해."  

1화 명대사


나는 책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나의 부모처럼. 그리고 내 시대의 어른들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또래의 여자들처럼도 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나의 부모처럼 불행하게 결혼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고, 내 시대의 어른들처럼 부패하고 싶지 않았고, 내 또래의 여자들처럼 인생을 사진으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 행여나 실수를 해도, 혹여나 옳지 않은 행동을 해도, 지나간 일들마저 모두 끄집어내 나 자신을 혐오하고 자책하고 용서할 수 없는. 스스로 감옥에 가둬버렸다고나 할까.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지금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한다. 괜찮다고. 네 탓 아니라고. 가끔은 남 탓도 하고. 성질도 내고. 치사하게도 굴고. 친구에게 화가 나면 서운한 얘기도 막 해버리고. 카톡도 씹어버리고. 그런데 이젠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에게도 나와 같은 잣대를 세우려 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자주, 많이 반성한다.



"나는 미련처럼 애틋한 장르를 땔감으로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기선겸 씨는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빛나는 순간들에 대한 미련, 그 미련을 값지게 쓰는 거."  

7화 명대사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주로 나의 아픔, 상처, 실연, 상심 뭐 그런 것들을 주로 글로 옮기곤 했다. 이렇게 다 솔직하게 써버리고 나면 후련해질 줄만 알았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마쯤 지나고 나니 그대로 있다. 이런 감정들이. 땔감이 되어 활활 타버려 남은 재가 바람에 다 날아가버렸길 바랬는데, 생각보다 재는 더 무겁고 밀도 높게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수많은 책, 콘텐츠에서 자꾸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나를 사랑할수록, 나를 아낄수록 나는 자꾸만 나를 몰아세운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니까. 나를 버리지도 못하고, 아끼지도 못하는. 꼭 나를 사랑해야만 할까? 그냥 적당히 좋아하면서. 미워하지 않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법을 드라마를 통해 배운다. 


나라는 장르를 땔감으로 값지게 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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