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믿을 것

우아한 폐업

by 도연




나 자신을 믿을 것


프리랜서는 소속된 직장이 없음을, 4대 보험이 없음을, 가장 중요한 월급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번 달에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다음 달도 일이 잘 풀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순간에 일거리가 뚝 끊어지는 상황도 빈번하다. 그래서 프리랜서들은 이 생활을 지속하려면 고정적인 수익을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J 와는 1년 정도 함께 회사생활을 했다. 처음에 그녀를 봤을 땐 '뭐 저런 애가 다 있지..'라고 생각했다. 지각을 1시간씩 하는 건 기본이고 클럽에 가야 한다며 퇴근시간 3시간 전부터 화장만 주야장천 하던 아이였다. 얄미워서 뭐라도 좀 시키면 1시간 만에 들고 와 '언니, 저 다했어요.' 했다. 그런데 더 얄미운 건 디자인이 너무 잘 나온다는 거다. 죽었다 깨나도 난 이렇게 못하겠네, 싶을 정도의 창의력과 속도였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퇴사하고 디자인 에이젼시에 들어갔다. 기본기를 다져줄 좋은 회사인 것 같아 그녀의 이직을 더 부추겼다. 내로라하는 디자인만 했던 에이젼시에서 기본기를 다져서 나온 J는 정말이지 디자인 천재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오래된 회사생활로 주눅이 잔뜩 들어 보인달까. 주 5일 이른 출근을 하고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결과만을 보고 노력과 마음은 이해해주지 않는 회사에 마음마저 다친 후였다. 이직을 알아보려 하는 그녀에게 이번에는 프리랜서로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J는 지각을 밥 먹듯 하고 회사에서 힙합을 듣고 춤을 추고 그랬는데, 그런 그녀의 태도는 회사에선 납득이 안되었지만, 회사라는 올가미만 빼면 문제가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자유분방하고 트렌디한 사람, 애초에 회사라는 옷은 맞지 않는 사람인 거다. 나도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면서는 하루 종일 작업만 하진 않는다. 일을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기타를 치거나, 또 갑자기 산책을 하고 들어온다거나 한다. 모두가 다 똑같이 8시간 의자에 앉아 일만 해야 된다는 생각은, 디자이너에겐 프레임이다.

이직을 준비하곤 있지만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겠다는 그녀에게 나는 여행을 추천했다. 쉼이 필요한 시기였다. 우린, 어디든 떠날 곳이 필요했으니까.


- 앞뒤 보지 말고 떠나자, 잘 쉬어야 회복도 잘 되는 거야.

- 너무 두려워요. 월급도 없이 여행을 떠나다니,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다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요?

- 우리 자신을 믿는 힘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앞일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자. 전전긍긍하면서 초조해하면 돈도 새어나가고, 행복도 놓치고, 나이만 먹는단다.



사람에게 다친 상처, 사회에게 상한 마음은 잘 쉬게 해 주어 회복시켜줘야 한다. 상처는, 반드시 내가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치료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치유는 없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더란 말이다. 떠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곳에 우리 마음의 휴식처를 만들어 놓는다면 기꺼이 떠날 것이다. 자신을 믿고, 자신감 있게,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행복하게 살자. 걱정하다가 나이만 먹기 전에.


그렇게 결국 우리는 모두 치앙마이로 떠났다. 그녀들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행복하다 말한다.


프리랜서 생활은 언제나 불안함 투성이다. 다음 달의 나를, 내년의 나를, 5년 후의 나를 계획할 수가 없다. 하지만 계획을 한들, 안정적인 회사를 다닌다고 한들 나의 내일을, 내년을, 5년 후를, 10년 후를 확신할 수 있을까? 누구나 내일은 모르는 법이다.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거다. 내일의 나를 위해서 오늘의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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