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의 오류는
결론은 없다는 것이다.

by Romantic Eagle

긴 줄 알았던 것을 아니-화 한다는 게

얼마나 억울한 일이냐면,

그냥 기-라고 생각하기 위해 기를 쓰는 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옆-사람 해지 통지서를 받고도

그 종이 조각을 들고도

아닐거야 라는 프레임을 버리지 못하고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나를 보던 초점이

ㅎ ㅏ.


없네.



그래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종종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들을 깨달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내리고

비울 능력도 안 되는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속을 비우기를 반복하면서도


다음 사람에게 똑같은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나는 내 스스로

누구의 옆 사람도 될 수 없다는 낙인을 찍는다.



이 낙인이야말로,

혼자였던 나에 대한 기억 매몰 비용을 버리지 못하는

관성의 플레이인지도 모른다.



아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순조롭게 나를 솔로의 길에 안착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흘리는 눈물에

염분이 빠질 때 즈음이면,

너무 울어서

우는 게 더 이상 나에게 강한 자극으로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글로도 나를 달래지 못하고,

찾을 엄마 아빠도 없고,

술도 쓰고,

커피도 쓰고,

너무 들어서 들을 노래도 없고,

말도 말 같지 않고,

먹는 것들도 뻔하고,

봐야 하는 사람들도 뻔한 바람에,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잠들면 다시 일어나서 같은 후회의

시나리오를 쓰다가

진부한 레퍼토리를 못 이겨

잠을 청하면서


계속 반복하는 행동으로 후회를 반복한다면

그 레퍼토리가 일종의 나의 전방선을 지키는

정체성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들어야 했다.



그러나 꺠달은 것도 잊어지고

잊은 것도 생각나고

토라졌다가도 돌아서서 안기고

채운 배도 다시 고프고

달도 찼다가 사그라들고

해도 떴다가 지듯.



어느 정도 자연 현상이 보장하는

지독한 반복 속에서

내가 나를 나라고 지칭하는 개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든, 살지 않든의 희미한

구분 선상에서

만나서 좋았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야 했던 "모든" 내가 눈을 맞췄던 사람들이

구성하는 이 개체를

그래도 안아주지 않고는

하루도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결론적으로 나를 안아주고 재워야 할 거라면,

조금 덜 힘들게 하고 싶은데,

힘들 게 사는 데 중독이 된 건지,

주변 사람들은 힘들게 하는 것으로 내 힘들었음을

극대화 하려는 내 본질적 존재 영역을

파괴하려면 나도 파괴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어느 쪽이든,

내가 없어야 했다.


나의 성질을 죽이든, 나를 없애든.


다시, 결론은.


혼자 살게 두지 않는 사회라는 레퍼토리가 낳은

개체로서, 나는 그 개체가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과 공식에서

많이 벗어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래도 같이 "좋게 좋게" 사는 데 익숙해져야 했다.



그래도 영혼이 육체를 만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살짝 더 "살아있었음"을 느끼고

결론적으로는 반환되어야 할 시공간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조금은

따뜻했고, 이 세상도 따뜻할 수 있었음을

마음 편히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의 오류는 결론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을 내야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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