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습니다.
그래도 돌아가는 세상은
나를 죽게 버려두지도 않았지만
살게 하지도 않았다.
표류하던 비행기를 타고
정박한 항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 시각을 기점으로
아주 많이 사랑한 사람을
돌아서서 살아야 하는 공간은
내 눈물만이 발자국을 남기는
중이었다.
운명은 실험 대상이 아니었다.
운명은 그만큼 강력했고,
운명을 이기는 건
각종 서류들과
이민국이 관리하는
조건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종착역이
아님을 알았기에 그는 나를
보낼 수 있었고,
나 또한 그가 잘 지낼 것임을
믿었기에 올 수 있었다는 건
좋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나의
희망소망. 쯤이었다.
머리에 피가 마를 때 즈음이면
프렌즈을 반복 시청하거나
예능의 뻔한 패턴이 뻔하게 웃기는
정도로 내 주위를 돌릴 수 없음을
알게되고,
그가 너무 보고싶다.
그가 보는 내가 그를 보는 상황의 밀도가
그립다.
떠난 사람은
그리워 할 자격도 부여받지 못하는 듯
나는 마주하고 웃을 사람의 부재로 인해
영화에서 마주보고 웃는 두 사람을 향해
쓰다 달콤해진 웃음으로
잠시 웃는 듯 했지만
자신이 없다..
항상 이 zone 에서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쁘기 보다
있던 우리를 끝내야 했어서
너무 슬픈게.
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져도 “괜찮아야” 하는 지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시 살 힘을 얻으려면
깡그리 그를 잊어야 했고,
그의 문자 한 두 개로는
버티기 힘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또 울고 있었다.
기억이 죽어야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차원의 공식을 가슴에 새기면서
보고싶다는 메시지나 끄적대는
내 두 손이 떨리는 걸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당장은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을 청하겠지만
버젖이 곧 잠을 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