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_is_It

n o m o r e d r a m a

by Romantic Eagle


인간의 역사와 드라마의 역사는 서로 공진화하였기에, 내가 아무리 드라마를 빼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드라마의 연속 선상에 있는 발을 빼낼 수 없는 개체에 불과했다.


길을 걷는데, 한국의 시공간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매우 느리게 걸어진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기억은 나를 그래 왔던 데로 살게 하지만, 그 상대방의 부재로 인한 막연한 인지 부조화가 생기는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음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방해하는 아주 흥미로운 패턴의 세상에 놓이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주 자주 발견하여 이제는 습관이 되었지만.


하루에 연락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에, 그 시간 내에 답장이 제때 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그 한 시간은 한 달과 맞먹고, 두 시간은 꼭 1년만 같다. 물리적 시간의 단위보다 인간이 인지하여 늘리고 줄일 수 있는 시간의 역할이 더 잘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아직은 끊기지 않은 연락은 헤어지기 위한 잠정적 보류의 시간인지, 다시 이어지려 하는 순간을 위한

과도기인지 서로는 아직 알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다만 “지금"은 이 뜸한 연락도 없음은 생각하기도 싫은 방식으로

우리가 서로의 영역을 떠난 지 17일 즈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헤어진 순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더 두려웠다.


그 마지막 순간의 고통스러운 이별의 시간, 각자가 붙어있다가 다른 공간으로 찢어지는 그 순간이 슬픈 만큼

내가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최근의 모습인 그때가 가장 생생하기 때문이라서가 아닐까.


사실, 그곳에 있을 때에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그의 관심을 나눠야 하는 시간은 어쩌면 내가 와야 함을 알았기에, 그들에게 시간을 빼앗긴다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흘러갔고, 그가 그의 타인들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그런 태도를 그는 매우 싫어했다.


이렇게 같은 정서의 모습으로 거의 20일을 같은 서술을 하다 보면, 그 서술에 꽤 질리는 방식으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문득문득 그와 헤어진 순간이 떠오르면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렇게 반복되는 구절을 적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와의 이별을 나의 잠정적 미래로 재생해내려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와의 스토리만큼 나에게 지금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기에, 나는 나로 하여금 그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 슬픔에서 빠져나올 다리를 짓고 있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거듭할수록 그 스토리가 더해지고 뺴지고, 그 전지적 작가도 목소리를 바꿔갔다.

이제는 누구의 서술이 진짜인지, 어제의 내가 진짜인지 오늘의 내가 진짜인지도 헷갈리는 방식으로

나의 서술의 중심이 되는 것은 그의 연락의 유무였다.


이렇게 내가 헷갈리면, 나는 인간의 “의식"에 관한 영상이나 “현실"의 정의에 관한 영상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이 상황을 바로 인식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그를 그렇게 두고 “여기에 온 건 실수"라는 하나의 가슴 아픈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그리고 그 사실 또한 “지금"의 입장에서는 거의 “허구"에 가깝다는 것도 깨달아야 했다.


뭐가 진짜냐고.


때로는 우리가 진짜라고 여길만한 조건에 있는 상황은, 상대의 목소리가 나를 인지하는 방식으로 그의 머릿속에 “실재"한다라고 여기고 있어야 하고, 나의 목소리가 그를 그와 같은 “주파수 영역"에서 그를 “실재"한다라고 여기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 각자의 물리적 “현실" 논리에 상응하여 조정되는 뇌파와는 반대로 그 뇌파가 기억하는 형상과 잔상이 남아, 그 차이에서 인간은 실재와 부재 사이에서 어떤 것을 실제로 선택해야 하는지 앎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할 “실존적" 이유가 생긴다.


그렇게 잔상을 잡고 있지 않아도 “육체가" 기억하는 시공간이 혼돈에 거주하고, 그 잔상을 잡고 있어도, 그 잔상을 잡고 있을 수 있는 기한은 꽤 정해진 방식으로 결국은 “물리적 현실"이 기억의 저항을 이기고 기억의 불을 잠재운다.


그 부분이 싫었다.

잊어지는, 부분.


“우리"를 그때의 현재로 영원히 묻어야 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현재"를 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나를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의식이 해리(dissociation)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인지하려 하는 그때를 다 분해해서 무엇이 진짜였는지 알아내야 내가 지금 이 상황을 덜 억울하고 덜 울면서 견딜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다 분해해서 각주를 달아서 따져도, 그냥 아주 단순하게 그 사람 곁에 지금 내가 없다는 사실이 절대적으로 화가 날 뿐이다.


그래서 내 의식이 행복할 만한 상황을 그를 분석하는 나를 이용해서 계속 그 상황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인생이 아주 단순할 수 있는 경우는 오로지 그 경우인 것 같다.

“니"가 좋아하는 “것"이나 “사람"이 있는 곳에 “니"의 다른 상황을 조율하도록

그쪽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좋았던 것을 그렇게 잃어버리고도

그것을 “견디느라” “노력”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 잃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Now is IT......


... and you're not here Now..


: Yes More Dra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