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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Aug 17. 2020

-1-You are my "Poetry"

"타인" 같은 소리


타인이 어디까지 타인이어야 하는지는 내가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했을 때, 그 특정 사람들이 다른 일로 주의를 빼앗겨 있는 그 철저한 사각지대에서 타인은 “절대적으로" 타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했다. 


나 또한 특정한 어디에 주의를 빼앗겨 있을 때에는 다른 “타인"들에게 온전한 주의를 집중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 또한 특정 "타인"에게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타인"임을 아주 수많은 반복 속에서 겨우 터득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그냥, 볼 TV 프로그램도 없고, 영화도 특별히 나를 흥미롭게 하지 못하고, 드라마는 단지 아주 오랜 시간 전에 녹화된 그때의 산물이라는 것 정도를 깨달을 때 즈음이 되어서인지, 딱 이 철저히 특정 타인에게서도 주의를 구할 수 없고, 내 주의를 줄 만한 “타인의 작품"들 또한 이제는 “어제 이야기"일뿐일 때, 비로소 나의 영역에 들어와 거울 속 나를 보고 있는데, 그 어떤 중력으로도 잡아낼 수 없는 의식의 발산, 그 어느 지점에서도 나를 특별하게 원하지 않겠다는 그 존재하는 의식적 진공 상태를 견디기가 나이가 들 수록 버거운 건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처럼, 만화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빨리 깨달았으면, 내 삶에 조금 더 일찍 신경 쓸 수 있었을까.


라고 묻고 싶지만, 그러한 “조건절"을 사용해 봤자인 걸 아는 서른한 살은, 노트북으로 시선을 두고는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지금을 중력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래도 시선이 빼앗기고 싶은 곳은 기억의 직접적인 실마리인 연락이 닿을 수 있는 “타인"이지, 이 일련의 문장의 조합은 꽤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엮어내는 보이지 않는 실이 땋은 나한테만 “실물"로 보일 수 있는 아주 고유한, 나눠지지도 않는 외로운 “독백"일뿐이다. 


책이 일말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가정 하에, 나의 친하다 여기는 “타인"은, 즉 나의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부터 하루하루 무엇을 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연결성을 가진 타인이 “현재"에도 나의 시시각각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연락 구조와 환경 구조에 있다면, 그 타인의 “물리적” 존재야 말로 나의 매일 쓰는 유기체의 성격을 지닌 “책"인지도 모른다. 


굳이 거창하게 “책"이라고 칭하지 않아도, 그래도 내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달받는 방식으로, 그 “순간"의 “현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나는 “현재" 이 곳에 “존재" 하고 있었다는 발자취를 남기는 것인 것이다. 


무의식적인 일련의 행동의 합이, 그래서 서로가 같은 물리적 공간에 지냄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자기장이, 이미 그 고유한 영역을 끊임없이 인지하는 방식으로 인지당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명상의 개념 원리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상은 그 순간에 존재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인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순간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 순간에 존재한다는 전제가 둘을 보호할 테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는, 글이 아니라 

내가 너를 보고 네가 나를 보는 눈 빛 속에 존재한다.




Your Eyes on me is my favourite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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