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tic Eagle Sep 15. 2020

존재 무효 선언서

네가 없다. 고로 나는 무효하다.

한심하다는 주위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나는 그들의 시선을

쉽게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떠난 이후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음에도



내가 지나가겠다는 입구에서

사람들이 나를 막고

열 체크를 한다.



나를 인간 취급하는 건

일련의 기계나 내 신용카드 속의

칩 정도인 것만 같다.

혹은 꼬박꼬박 나가는 보험료이거나

답장 없는 당신의 늦은 대답 즈음인 것도

같다.



서른 넘어서

인생이 재부팅되고 있다.

컴퓨터를 끄고 싶은데

죽으나 살아 있으나

흥미롭지 않아야 한다면

허구한 날 통닭을 먹을 수 있는

이 쪽을 택하는 방식으로

먹고 나서의 허무함이 지배하는 시공간은


네가 없음. 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존재하고는 했다.


하드웨어는 살아있어야 하는데

소프트웨어는 다 망가졌다.

거리를 헤매는 나는

아기가 아닌 이유로

울 수도 없었다.



난 떳떳하게 그 사람을 사랑했다.

그런데 그 시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가 없는 시공간에 적응해야 하는

내 소프트 웨어는 혼돈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여기 적응해버리기에

너무 생생한 기억은

상대의 부재로 인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에 용해되는 방식으로

나는 그리하여 존재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움을 재생하고는 했다.


머리가 빠져서

가슴에 난 구멍만큼의

구멍이 생겼다.



그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외로움과

나를 살려야 함에도 기억을 살리기 위해

나를 병실로 밀어 넣으려 하는

기억의 관성 사이에서


친구들은 내 고민에 지쳐 떠나가고

하소연할 장소가 있고 없고 와

무관하게

나는 시들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누구를 안아 버릇하다가

안을 사람이 없어진 일련의

24 시간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밖에서는 좀처럼 멀쩡하게 서 있기도

버겁다.



그립다고 하소연하는 나에게

그는 그러지 말고 내 “오늘”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만큼 나를 잊은 영역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그의

암묵적 고백에

나는 한껏 눈물을 쏟아내고는

적당히 무릎으로 걸어가

샤워를 한다.



하루의 무게가 50 그램을 넘어가면서

내 기억 속의 코펜하겐도

적당히 타인의 세상으로 치환되었다.



내가 여기 온 것이 필연이라는 거짓말로

나를 위로하기에 나는 잘 알았다.

이 상황은 일련의 원인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인 방식으로

다른 결과와 결말을 모두 포함한

일종의 나라는 특정 인간 존재의

합이라는 것을.



베이비.

우리가 헤어진 게 필연이라면

만난 건 무엇이어야 할까.

사랑이 있어야 한다면

거리 따위는 감정이 약해지는

요소에 속하면 안 되는데

너의 숨결이 곁에 없는

상황의 복제에 길들여지는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말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바로 지금도 우리의 같이 있었던

기억만은 내가 살아있는 한 유효한 걸 알기에

나 죽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너의 여자였음을 기억하면서

이 사람을 사는 그 괴리는

나를 차츰 유령으로 만들고 있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전에

내 의식의 아직까지 있음이

나를 살리는 동시에 죽이는

순환 고리에서 나는

너를 그리며 웃었다

너를 그리워하며 울었다를

반복하다가

잠이 들고,

깨고 나면


다시 일련의 논리와 글자들로

이별에 항소하고,

현실의 판결을 받고 나서야

발바닥을 방바닥에

딛고 한껏 찌그러진 인상을

풀지 못 한 채

빛나는 햇살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어두운 욕실로 걸어 들어가

불을 켜.



사랑한 만큼 아프다던데.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서

아파야 한다면, 그 영광을 돌릴

대상은 제약 회사의 명세서일 뿐인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과 그를 지탱해 줄 그물이 없는

그물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나는 사랑을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석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시선을 가진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매력을 환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다시 살아야 할 궁리를 한다.



글로 적어내야 살려지는 당신이 아니라

방 문을 열고 나가서 눈을 맞추면

씩 웃으면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던

당신이  

아직도 생각나는 “현실”을 아직도

못 떠나는 나를

가끔씩 담배 필 때

생각하면서 한 번 혼자 씩 웃고는 해 주겠어?


작가의 이전글 can I stay in your lif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