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붙잡는 엄마가
점점 낯선 사람이 되어가고
수화기 너머로 아직도 통화해주는 당신은
이제 나의 가장 먼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자
잊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정당화할 수 있는 현실이
이 세상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만큼은
보이는 세상이 없다.
적당히 하라는 타인의 말조차 들리지 않을 때에도
타인의 명의로 된 카드로 밥을 사 먹고
커피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역겹게 만드는 방식으로
나는 진짜 모르겠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내 전부의 현실을
내어줄 거였으면
그 현실을 떠나 사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어야 했다.
난 이제 살아있다는 것의
희미해지는 의미의 거짓말의
속삭이는 진실에 귓등이 따갑다.
취기가 주는 진부한 알딸딸함이
속삭이는 거짓 희망 고문에
진저리가 나서 술을 끊었지만
24 시간 동안 내가 머물 수 있는
현실이 거의 없을 때
내가 잡혀있는 유효한 현실은
주민등록증이 말소되지 않은
88년 생의 적당히 산화된
피부일 뿐인 것 같았다.
힘들다는 말을 자꾸 하는 이유는
정말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어서이고
누군가에게 그 말을 강요해야 한다면
그 말을 듣는 것의 의미를 의심해 볼만 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면
왜 자꾸 힘들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정녕 언어의 습관일 뿐인 것일까.
병원에서 몸에 난 어떤 것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겠다고 해서
내 이름을 써서 그 피가 나는 사건에
동의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병원을 뛰쳐나왔다.
살아야 해서 찾은 병원에서
나를 살리겠다고 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바람에
병원을 나온다.
누구를 사랑했던 기억이
한 생명을
이토록 시들게 하더라도
멈출 수 없으면
이 사랑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내가 보려 하지 않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의 의미를 느낄 수 없다.
적당히 몰래
타인의 현실에 기생해보려 해도
이미 그들에게 투명인간이어야 하는 내가
서 있어야 하는 사회적 거리가
꽤 섭섭한 방식으로
귓가에서 신나게 울려대는 노래를
같이 들을 당신이 없다.
인간에게 인간이 어느 선 이상까지
필요로 하는 것일까.
타인을 사랑한 순간
나를 묻어버리는 내 습관이
타인에게 너무 필요 이상의 특권을
주었음과 동시에 그만큼 멀어지려 하는
물리적 공식에 따라
나는 이제 내 사랑을 정의하기에는
내가 너무 웃겨졌다는 걸
깨달아버린다.
호주, 미국, 영국, 덴마크, 한국
그렇게 나를 타국에 놓아두면서
나를 시험할 수 있었던
용기는 막상 연기가 되어
서른 하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연락망과
혼자여야 하는 그 삭막한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어제의
사전을 안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그 어제에 존재했던 어느 누구도
나를 안 적이 없는 방식으로
그렇게 떠나 있었던 바람에
엄마 아빠가 알던 착하고 순진했던
아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고의 패턴이 깨지지 않는 이상
나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사고의 패턴이 깨지면 당신의
여인도 사라질까 두렵지만.
당신이 사랑한 내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이미지일 가능성은
당신이 아직도 나를 좋아할 가능성만큼
희박했다.
삶은 따지기에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고,
기억하기에는
너무 왜곡하기 쉬웠다.
그래서
통화 가능한 번호를 하나쯤 가지고
가능할 때 연락하여
일반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덜 외로울 수 있는 방식으로
지독하게 고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했다.
당신의 현실 좀 빌려줄래요?
제가 조금
불안정해서요.
금방 떠날게요.
당신이 인지한 적도 없다고 여길 정도로
짧게 있다가.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