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ity needs to go
내가 뭘.
원할 수 있는데요?
내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여러 가지의 "현실"일 수 있었던
장면들의 겹겹은 나의 현재. 만큼은
현실로 인정하기 싫게 만드는 방식으로
나는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기억의 모든 언저리에 존재하는
비겁한
남자가 아닌 두 개의 성별 중 하나였다.
뭐가 난데요.
바리스타? 제빵? 웨이트리스?
요리사?
일상생활에서 접근 가능한
직업군들이 나의 일말의 가능성의
pool안에 들어오지만
정작 내가 소화해낼 수 있는
모습, 혹은 내가 존재하고 싶은 의도가
있는 "현실"은 "그 사람"이 있는 곳과 시간이었다.
내가 "뭐"라서 좋아한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사랑했다고 확신하게 한
그 사람의 울타리가 아닌 곳은
이불 밖은 위험하듯,
나에게 적나라하게 낯선 곳일 뿐이다.
어쩌면 현재를 인지하지 않고 보내려는
버르장머리가 모든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그 구인공고를 클릭할 수 있는
기한은 지났을 뿐이었다.
글이 얼마나 장황할 수 있는 것과
무관하게 자아내야 하는 그 잘난 현실은
나를 잠도 못 쉬고, 숨도 못 들게 한다.
어디서부터 나를 잃었을까.
내가 누구였을까.
적잖이 한심하게 쳐다보는 엄마의
나를 향한 눈빛이 현실인 방식으로
내가 그리하여 그를 외면하고
눈을 감아 데려가는 곳은
그 사람이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시공간이다.
실연에 좀 무너지면 어떤데요.
1-2 년 좀 아프면 어떠냐고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시련을 견디는 공식은.
태어난 시각과 시점과 위도와 경도가 다르듯.
그러나 그 무너진 시간과 공간에서는
의사도 없고 약도 없었다.
그냥 시들다, 링거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아무리 세상에 반항을 해도
더 들 수 없는 잠과
더 기억해낼 수 없는 그 어떤 시점은
나를 제대로 허탈하게 한다.
나쁜 건 기억이 안 나고
좋았던 것만 기억으로 무장해서
나를 현실에서는 무뎌지게 하고,
타인에게 증명할 수 없는
내가 사는 세상은
엘리스의 원더랜드보다
삭막해져 갔다.
이제 아무 현실도 내 현실로 인지하기 싫다.
너를 잃고도 살아야 한다면
너를 잃었는데도 나보고 웃어라 한다면
나는 그러나 이렇게 모든 글을 써 버릇하는
습관부터 버려야
숨을 좀 쉬며 살 듯 보였다.
그러나 글도 안 멈춰지고
네가 그리운 것도 안 멈춰지고
불면증도 안 멈춰지고
나를 보장하려는 자격증들도
무거운 방식으로
그는 내가 무거워졌는지
나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 한다.
당신이라는 환영의
물고기가 내 마음속 어항에 있는데,
그는 나에게만 보였다.
그 물고기라는 아이디어 속에는
당신의 주체적인 나에 대한 인지만큼은
없는 방식으로
그 홀로그램을 계속 살려두는 건
나의 하릴없이 그리워하는 습관이었다.
네가 싫어.
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점점 연락에서 멀어져 가는
당신을 붙잡을 단어도
너무 자주 써서 사라지고 있을 때,
비로소 내 기억이 너를 놓고,
네 폰에서 내 연락의 알람이
사라진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면,
나 억울해서
왜 살지.
앞으로.
앞의 글을 다 지우고도 다시 쓸 수 있는
내가 놀라운 방식으로
현실은 꽤
촉각이 닿아서 잡을 수 있고,
시각이 인지해서 사회적 거리를 가늠할 수 있고,
청각이 날 웃기게 하는 농담이 들리고,
후각이 있기에 항복당하는 빵 냄새에 지갑을 열고,
미각이 있기에 어떻게든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나타난
음식을 먹는 그 아주 1차원적인
역할놀이에 수렴하는
그리하여 어느 차원의 역학을
빌려서 금요일 오전 11,56분을
내 현재로 인지하든,
이 시각 나의 편한 장과,
편한 숨과 잘든 잠으로
멀뚱멀뚱하게 보낼 수 있는
보채지 않는 나의
일말의 "안녕"으로부터
시작되는 철저하게 현실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나오는
배부른 시나리오인지도 몰랐다.
혹은 배고픈 시나리오거나.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기억 해내 와서
우는 그 고통이 잠시 떠난 시각에는
웃을 만도 했다
인생.
살아보다가
정말 정말 날씨 좋은 날
정말 여유가 넘치는 어느 오후
커피를 한편에 두고
전화를 걸어볼까.라는 고민만
100번 한 후 잘 지내냐는 문자를 보냈을 때,
전화가 와서 나도 잘 지낸다는 목소리를
나에게 들려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있을 것이라는 희망.
혹은, 그 커피 잔의 상대편에서
나를 의뭉스럽게 쳐다보는 사람 한 명.
없더라도,
그 평안할 수 있는 시각 언저리에
진짜 좋아하는 사람.
이랑 있으면서 이게 꿈인가. 싶은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밥이나 먹으러 갈 수 있는.
뭐 그런 것들.
뭐 그런 것들...
뭐 그랬던 것들.
그냥.
네가 없어서
나의 상상력의 한계가 없다는 것만
알 것 같은.
토요일 같은 금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