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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Oct 11. 2020

나 이제 자러 가요 , 잘 잘게요.

읽음 00.23

오래 없는 연락에

살짝 지칠 때 즈음이면

자러 간다는 쓸쓸한 퇴장의

메시지를 남기고 자는 척이라도 하지만

한 번 더 듣고 싶은 적잖이 무심한

알람 소리에 굶주려 있던 것임에

더 가까웠다.



내 24시간의 지표가

다른 나라이고

몸은 그의 다른 나라이고,

마음은 한국이 아닌 곳에 정박해 있고

그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반적인 그 값의 평범한 사실에서

나의 마음과 몸은

내가 내리려는 닻을 거부하는

상황들로 하여금

나를 돌보지 않는 이 개인에 의해

거처를 찾지 못하는 바람에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은

일상이 되고,

그리하여 깨어있지 못하는 아침은

밤이 되었다.



서른이 애매하게

어른스러워지면

너무 철이 들어 기대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고독한 시름의 고름이

몸을 다른 세상으로 먼저 보내려고 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래서 누군가에게 좀 기대 보려고 하면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은근슬쩍 날 피할 권리가 있는

모든 타인의 권리를 이해해야 하다 보면

내 곁엔 날 보살피는 내가

있어야 했다.



내 영혼의 변덕을 받아줄 또 다른 나는

그리하여 일을 하고 세금을 내고

마스크를 쓰고 뭐라도 하는 방식으로

밤과 아침의 비개연적으로 일관적인

불쾌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초콜릿이라도 사기 위한

알바라도 해야 했다.



철학을 세우기 위해

처절하게 고독해봐도

따뜻한 눈길 앞에서

어버버 거리는 육체의 속마음은

그래도 누군가의 사회적 거리보다는 가까운

위치에서 아스라지게 안기는 그

순간을 늘 염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영혼은 내 외모에 관심이 없기에

의식의 불안이 그려 낸

미간의 찌푸림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청첩장을 준다고 불러낸 친구가

의도치 않은 나의 인상에

불편한 듯 보인다.



결혼식.

그 시끌벅적하고

고독한 감정 노동의

시간이 곧 다음 주로 다가온다.



상처 입은 심장을

안고, 애써 피해 다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 그 감정 노동의 대가로

축의금을 내고, 결혼식 이후로

자주 보지 못할 암묵적인

동의서에 가장 밝은 미소로 서명을 하겠지.




이처럼



축복 속에 진행되어야 하는

결혼식의 의례와 무관하게

누군가는 아픔의 가슴을 안고도

그 공간에서 웃고 있겠지.



그래서 아픈 가슴을 안고 있겠다는

그 드라마틱한 의도만큼

소용없는 건 없는지도 모른다.


웃을 수 있으면

그 때는 웃었고 행복한 것이었음이렸다.



내가 행복한 상황을

만들어 유지보수를 하는 것이

삶의 정도 중 하나이겠지.


사회 시간의 역할은 그들의 룰대로 

흘러가고

인간 시간의 역할은 그 각자의

서사적 자아의 무게와 위치에

수렴하는 방식으로



인간으로 사는 건

역사의 보배로 존재하는 것

이하로 유치하고 찬란하고

달콤하고 겁나고 진부한 방식으로

어제 같을 수 없는 새로운 날이 밝아도

어제의 공식을 들이대어

불행하려 하는 내가



귀엽다.


아직도 애기다.



관심에 집착하고

무관심에 삐지고

자유를 갈망하지만

꼭 벗어나고 싶은 누군가를 둬야

맘 편히 자유를 정의할 수 있는.



아직도 묘비명은

이제 좀 살 것 같다.이다.



그전까지 그래도 달달한 빵에

커피 한 잔에 영혼을 팔 수 있는

이쪽 세상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환경의 방해 공작에서도

밤에 설치지 않는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에서

그 주가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오늘은 얘를 좀 재우고 싶은데,

시계는 1.53을 가리킨다.



나이가 숫자이듯

시간도 숫자이다.



잘 잘게요.



죽으면 슬프다고 울 수도 없겠지.

이렇게 살아있을 때 많이 울고

웃고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특권으로

삼고, 작정하고 살다가 작정한 적 없이

이 세상 떠날 때,

비로소 난 당신과 내가 한 집에서 살면서

어느 주말 오후 무슨 영화를 볼 지

고르며 소파에 앉아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렸다.



지금 흘리는 이 눈물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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