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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Oct 15. 2020

(또) 오늘이, 입장하겠습니다.

오늘을 건너뛸 수 없는 그 참을 수 없는 사실과 싸우면.. 집니다.

참을 수 없잖아.

왜 또 일어난 건데.

왜 또 눈이 떠졌고,

어김없이 6시 반 즈음이 되면

요즘따라 햇빛이 내 잠을 왜 깨우는 건데.



햇빛이

든 적 없는 잠을 깨웠을 때,

그때는 그 햇빛이 아주 좋은 미끼가 된다.


해의 존재로 인해

살고 있는 내 잠을

깨우는 해를 원망하기에는

너무 늦은 걸 알게 되면



잠옷 위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옷을 걸쳐 입고

23층을 걸어 내려와

평지의 공기를 만날 때 즈음에는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난무했던 기분이


덜 나쁘다.



이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란....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짜증을 낸 건지...

싶으면서도, 결론적으로 기분이 좋고 있으면

좋은 생각도 간간이 하고는 했다.

1분 전에 죽고 싶어서 how to die를 검색하던 31살 아기는

하릴없이 색이 변해가는 가을과 낙엽의 collab으로

예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장면에

적잖이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이고는 한다.



저 변덕.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도 믿지 말아야 하는 만큼

싫어한다는 말도 믿을 이유가 없는 오늘 같은 목요일은

적잖이 좋은 날씨에 괜히 짜증을 내면서

씩 웃고 있는 내가

봐주기 버거워서 집을 나온다.




서빙 알바라도 해야 한다는

단순 노동의 단짠단짠 한 유혹이

그 일련의 지원 과정이 번거로워서 나를

장롱 속에 가두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몇 년 전에 받은 운전 면허증을 만나서

회포를 풀었다.

사진 속 나는 꽤, 어린 방식으로

내가 유일하게 그녀에게 부러운 건,

상처 받은 적 없는 저 금붕어 같은 눈동자였다.



지금 내 사진의 눈은

무언가를 매우 그리워하는 바람에

초점은 1년 전을 향하고,

표정은 무덤을 향하는 것 같다.



차라리 알바를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누워서 먹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와 타협하지 않을 때에는



인터넷을 켜기도 싫고,

누워있기도 싫었다.

누워 있다 보면, 누워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만큼

서 있는 것이 그렇게 번거로울 수가 없다.



핑곗거리가 하나둘씩 생기면

그 핑곗거리의 개수의 증가가

복리의 원리를 이해하기도 전에

나를 아주 깨달음의 무알콜에 취하게 한다.



그렇게 그렇게 자고

생각을 하고 하고

그래도 오후 12시를 넘기지 않는다.


ㅎ ㅏ....



그래서 집 앞 공원에 나가면

눈 앞에 알짱거리는 타인의 세상이 그렇게 부럽다.


가족, 아이, 서로의 목소리의 domain에 묻혀

나는 안중에도 없거나

나를 아주 친절하게 갑자기 "이모" 한테 인사를 하라며

그들의 시간에 끼워준다.



그럴 때, 심장이 쿵 따뜻해지지만,

이내 그들의 거리가 나와 멀어질수록

서늘해지는 감정에 가을이 더 추워서

오늘은 따뜻한 커피를 사 먹어야겠다.



그렇게 부러운 타인의 삶도

막상 문을 두드려 들어가 보면,

그들도 그들만의 세상의 희로애락이 그득하다.

그리하여 내가 낄 틈이 없어야 하는 만큼

중요하지 않은 낯선, 그리고 친숙한 타인은

1년에 한 번 정도는 허용할 만한 방식으로

1년에 한 번 보다는 자주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혼자로 살고 있는지, 83일째,



나는 오랜만에 삼촌 집을 들렀다.

단지 알던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비이성적인 삶에 대한 애착을 경험하고 있었다.



혼자의 혼돈,

자아 성찰이 데려가는 깨달음의 태풍 속에서도

인간이기에 타인의 심박을 필요로 하는.



심장 박동 소리의 사회적 거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타인"이라는 팩트로

아주 멀어야 하는 만큼

당신의 심박이 나의 심박이었던

그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운 방식으로



그를 그리워하면 할수록

심장이 고장 나고 있기에

그를 잊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83일의 랩소디는



어느 시골 카페의 오늘의 선곡에 따라

3.5 분마다

그녀를 각각 다른 목소리로

달래지만,



울어서 닳은 그녀의 심장은

동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다보는 먼 산만이

다시 그녀를 쳐다보는 방식으로

그 상대가 특정 타인이 아니라는

기억으로 인해 불행을 연기해야 하는 숙명의

소녀는.



엄마의 정신 좀 차리라는 소리에

한없이 슬퍼질 뿐이다.



확실한 건,

주변의 상황에 제시하는 조건에 의해

눈치 보면서 살다가는

그의 존재와 부재의 교차로에서

불규칙한 신호의 노예가 되어

오늘은 좋았다가

내일은 더없이 마이너스 통장을 볼 때와 같은

심정으로 지내면서

그의 숙주가 되어

산 적 없이 살다가

이름을 남기고 내용은 없이도

지구에서 살았다고 떵떵거리면서 말하고 싶겠지만,

그때 즈음에는 목소리도 형체도 없이

의식에 종속되어 나를 나라고 가리키지조차 못할 방식으로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어

우주의 숙주가 되어 있겠지.



그래서 내가 나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지금이라고, 오늘이라고

지금 내가 나를 의식하고

거울을 보며 원형 탈모가 있는 자리를 보며

한 숨 정도 쉴 수 있는 것도

내가 나라서 가능하다고.




이러한 경건한 순간이 무색하게

나는 그의 연락이 1 시간이라도 늦으면

로그인을 해서 그의 최근 로그인 시간을 확인하는

아주 쪼잔해빠진 여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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