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뭐 드릴까요?
십 세와 이십 세 정도의
언저리에서 “상처”라는 단어를
내가 소유할 수 있다는 것만큼
가슴 뛰는 일은 없었다.
동백 꽃 필 무렵을 읽지만 않았어도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자아를 나레이터로 두지 않았으렸다:
상처를 받은 것 같은데,
상처를 준다는 것의 개념이 증발했다.
상처를 준 대상이 이미 아무 짓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그 무형의 상처를 끌고 와서
문신을 남기듯
주저앉아 보란듯이 술을 산 영수증을
바라보지만
다음 달 즈음 카드값으로 날라오는 그 훈장은
하루 이틀 최저 임금의 알바를 더 해야 한다는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ㅐ벽 ㅔ 시.
잠이 오지 않아
24시 편의점으로 내려가
꿀잠 4 캔에 만원을 내고
많이 잔 것 같은데
일어나 보니 6 시다.
고상한 개념 정리가 무색해지고,
맛있는 것을 입에 넣는 순간
잊을만 해 지고 다시
상처 주사를 맞는다.
상처 주사도 내성이 생겨버린
10월의 어느 날;
햇빛이 좋길래
기분이나 좋아져보기로 했다.
잠을 못 들 지언정
지금은 좀
웃어봐도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