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고통스럽게 살지 않았으렸다.
그리고 너와 헤어지고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토록 행복하게 살지도 않았으렸다.
지금 내 상태로 수렴하는 방식으로
지금이 불안의 늪이라고 인식되면
섣불리 불안에 내 영혼을 내어주면
안 되었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도
섣불리 그 행복감에 영혼을
맡겨도 안 되었다.
가슴이 벅차도 그래서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안되었고,
너무 아파도 그리하여 정신까지 무너져도 안되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도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원한다면 그
인간이 원하는 만큼은 이룰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의 세상이 전부인 사람의
세상을 행동이나 말로 짓밟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고,
그 사람의
세상을
알기도 전에 내 인생을 지키고 살면서
부득이하게 타인의
세상에 금이 가게 해야 할 때,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세상이 따로 있어야 함을
보게 된다.
결코 가장 이타적인 배려는
가장 이기적인 배려이고
가장 합리적인 이별은
가장 비합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지칭하는 방식으로
지창할 수 없는 것을 그려나갔고,
그리하여 너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 방식으로
그 외 타인들 속에서 나의 포지션을 찾아갔다.
본질, 시발점,
승화점, 영역 뭐 이런 것들을 따져내면서
따저낼 수 없는 것들을 손에 쥐어볼 때에도
주변인들은 나에게 온전한 세상을 보장해 줄
생각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듯 갖가지 핑계로
내 평화를 방해한다.
혹은 그들이 방해하지 않겠다는 순간만큼은
내가 심심해지고 있다.
너와 나의 구분은
존재의 위도와 경도, 지명이 다른 것으로부터
시작했고, 그렇게 구분 지어도
구분해 낼 수 없는 영역이 있기에
서로를 알아 본 것이 틀림없다:
커피
한 잔에 5500원씩 한다.
집에서 커피를 타 줄 사람이
있고, 그 커피에 향긋하게 웃어줄 사람이
있으면
성공한거냐고?
거울을 보고 내가 가장 잘 웃길 수 있는 사람이
나. 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시작되는 게
우리네들이 말하는 인생이라면
인생이겠지.
why no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