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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Jan 04. 2021

내가 내일 널 만날 걸 알았더라면

그토록 고통스럽게 살지 않았으렸다.

그리고 너와 헤어지고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토록 행복하게 살지도 않았으렸다.


지금 내 상태로 수렴하는 방식으로

지금이 불안의 늪이라고 인식되면

섣불리 불안에 내 영혼을 내어주면

안 되었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도

섣불리 그 행복감에 영혼을

맡겨도 안 되었다.


가슴이 벅차도 그래서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안되었고,

너무 아파도 그리하여 정신까지 무너져도 안되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도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원한다면 그

인간이 원하는 만큼은 이룰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의 세상이 전부인 사람의

세상을 행동이나 말로 짓밟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고,

그 사람의

세상을

알기도 전에 내 인생을 지키고 살면서

부득이하게 타인의

세상에 금이 가게 해야 할 때,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세상이 따로 있어야 함을

보게 된다.


결코 가장 이타적인 배려는

가장 이기적인 배려이고

가장 합리적인 이별은

가장 비합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지칭하는 방식으로

지창할 수 없는 것을 그려나갔고,

그리하여 너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 방식으로

그 외 타인들 속에서 나의 포지션을 찾아갔다.


본질, 시발점,

승화점, 영역 뭐 이런 것들을 따져내면서

따저낼 수 없는 것들을 손에 쥐어볼 때에도

주변인들은 나에게 온전한 세상을 보장해 줄

생각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듯 갖가지 핑계로

내 평화를 방해한다.



혹은 그들이 방해하지 않겠다는 순간만큼은

내가 심심해지고 있다.



너와 나의 구분은

존재의 위도와 경도, 지명이 다른 것으로부터

시작했고, 그렇게 구분 지어도

구분해 낼 수 없는 영역이 있기에

서로를 알아 본 것이 틀림없다:



커피

한 잔에 5500원씩 한다.

집에서 커피를 타 줄 사람이

있고, 그 커피에 향긋하게 웃어줄 사람이

있으면

성공한거냐고?


거울을 보고 내가 가장 잘 웃길 수 있는 사람이

나. 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시작되는 게

우리네들이 말하는 인생이라면

인생이겠지.



why n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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