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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11. 2020

당신을 잃은 대가=모두를 향한 짝사랑

"그는 나의 산소였다."


라고 말하기 전부터 산소가

나를 살리고 있는 전제가 필요했다.



표현의 자유는

생존이 자유로운 듯 보일 때야

그 활개를 펼치지,



상실의 damage가 터무니없이

일방적으로 컸기에,

몸이 움직일 수 없을 때에는

상상에게 날개를 가능한 한

많이 달아주는 방식으로

지나치게 중력이 강한

"현실"의 무게를 덜어보려고

하는 행위가 의미를 가진다.



그 이외에는 아름답고 장황하게

전개하는 글의 스타일이

내 발을 더 이 잘난 현실에

붙이는 것만 같은 방식으로



인생의 "해설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performer는

그 해설자의 기록에 발맞추기

위해 상당히 보수적으로

살기 위해 존재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만 같다.



이럴 때, 김밥 두 줄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달래지는

정신의 방황을 살펴보다 보면,



그리하여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하여

살 수 없다는 말을 내뱉는 이쪽의

사정과, 실제로 어떤 특정한 위도와 경도에서

그 공기를 먹고사는 개체의 존재는

얼마나 처절하게 불쌍하게

내를 묘사하는 것과는 별개로,

커피를 마실 거면, 돈을 내야 했다.



인간의 위엄은 일단은

사용 가능한 카드의 없지 않은

잔액이었다.

카드만 있으면 하루 정도는

감지 않은 머리로도 사람 취급은

받을 수 있었다.


사람...



내가 하는 덧없는 소리를 음소거시켜도,

그리하여 더 지어낼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울고 있었지만,

그 울음을 보며, 측은하게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일단, 쓰고 있는 마스크로

내 정체성의 90 퍼센트는

가려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려도 그렇게 가리지 않아도

그래서 나는 알았다.



증명할 필요도 상대도 없는

이 물리적 24 시간이

얼마나 길 수 있는 방식으로

얼마나 수면제 몇 알로

짧아질 수 있는지.



단 하루도 건너뛰고 산 적 없기에,

나의 겸연쩍은 현재는

늘 어제의 달콤함을 기억하고,

현재의 씀을 누텔라로 중화한다.



서른 넘으면 결혼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도 주변에 내 쪽에서 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인 것 같다.



더 이상 일반적인 중력도

내 의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없을 때,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외적 사실들이 나를 보호해주는 듯

보일 때,



이미 산산조각 난 자아를

쳐다보고 있는 저 사람은

나를 보고나 있는 것인지

나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인지

더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타인은 나를 통해 자신을 보고

나는 타인을 통해 나를 생존시키는 듯

보이는


서로의 "현실"이라 인지하는

자기장의 교집합에서

두 눈이 마주치고,

그리하여 사람으로 보이는

알던 사람들을

만났을 때,



차오르는 따뜻한

자기였던 그 사람을 잊지 못해

자꾸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아가 사경을 헤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안다.



그리하여

이유를 불문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를 쓱 지나가는

"아는 사람"

의 "존재"가



한 개체에게

얼마나 필요 충분한 조건인지.



요즘에는 누구를 만나도

낯선 사람들에게 인사를

크게 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낯선 사람의 눈 속에서

그리고 무심코 던지는

"네, 안녕하세요" 그 말이

들리는 순간 하나하나가

그래도 이미 흩어진

인생에 대한 목적을

주워 주워 나를 "나"로 구성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나는 안다.



당신이 없어야 하는

필수 조건을 감당해내야 하는

이 현실에서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공간을 살 수밖에 없는

결과 조건을 할당받았다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는 그렇게 나를 심폐 소생하고 있었다.



너를 잃고 사는 부득이한 자유는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한

그러나 오로지 나의 온전한

존재감을 위한 이기심에서 오는

이타적인 것 같은 행위라는 것을.




매일같이 전화하자고

눈치 보며 묻는 나에게

매일같이 바쁘다는 그를

아직도 사랑하냐고 물으면



나는 "아직도"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

"현재"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와 그는 이미 사랑하는 채 존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음에도,

살아야 하는 "오늘"의 반복이

살아야 하는 논리가 다른 "지역 사회"

의 질서에 따라 어쩌면 아주 다른 인간으로 살게

하는 자연스러운 조건을 무시할 수 없음도

알아야 하는 채,



수요일

13.40 분

그와 함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는

혼자 어느 지역에서

숨 쉬며, 그때의 우리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제는 "사실"이라고 우기기도

뻘쭘한 기억이

나를 더 아쉬움에 울게 하는

.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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