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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12. 2020

서른이 넷을 만나면 사랑도 사람도 무겁다

능동이든 피동이든

그 주체와 객체가 모호하다.


타인이 나를 보는 것인지

내가 타인을 보는 것인지

선택하여 구분하기도 전에

넷플릭스에 정신이 팔려있다.


커피가 너무 마시기

싫은데, 어제 마신 기억이

습관적으로 어제 갔던

카페 앞에서 나를 서성거리게

하는 방식으로 결국

어제 마신 커피로

습관이 선택한 하루를

네가 나를 살아보듯

나를 살아내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고 울부짖을 때는

어김없이 누군가가 의미없는 관심을

보였고,


누가 있다고 자만하고 있을 때는

어느 누구도 나의 척박한 존재의

텃밭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불안해서 자꾸

살기 싫다는 말만 번복하는

습관이 내 하루를 버겁게 하는 건지,

실제로 불안해빠진 영혼에

존재의 주체성을 빼앗겨서

불안한 건지

구분하기 지치는 30 대이다.


불안. 의 개념을 잡고 있는 건

사전의 ㅂ 과 ㅅ 의 정 중간 정도에

있는 정의이고,

그 정의에 집중하고 있지만 않으면

그냥 저기 뛰어 놀다 넘어져서

엄마를 바라보며 우는 아이처럼

단순히 즐거움을 추구하는

의식이 있을 법한 인간일 뿐일텐데,



사회적으로 진화한

서사적 자아가 멀쩡한 인간을

백수라서 쫄아있어야 하고,

외로운 인간이라서 쪼그라들어 있어야하고,

지나치게 뻔한 일상을

어떤 약을 먹어도 다르게 봐지지 않음을

한탄하며

마셔대는

커피도 감흥이 없고,

얼음 맥주도 춥기만 한

11 월.


보헤미안 랩소디가

맴돌던 시절

cigarette after sex의 노래에

취해 천장을 바라보던

1 년과 2 년 전의

청순해빠진 순수함이 그리운 건,


서른이 넷을 만나면서

순수함의 날개를 꺾어서

그런 건지,


사랑한 “당신”을 떠나는 순간

사랑에 대한 희망을 다

도난 당해서 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난 삭 드는 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싹 깨는

새벽의 어느

살벌한 침대 위를 떠올리며

오후 7시에 커피를

마시는 행위의 결과가

바로 새벽잠의 없어짐이

아닐까  하는

당연한 답과 질문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사람의

수요일 오후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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