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tic Eagle Nov 20. 2020

FactOry=Fact+Story

고향에 묶여있는 몸인 줄 알았고,

조국에 묶여있는 몸인 줄 알았지만,

하나의 개체로 어떠한 사회적

물질적 자격이 갖춰지면

어느 나라에서나

상호 합의에 의해

지낼 수 있음이었다.



어떤 자격의 포기와

다른 자격의 주어짐 사이의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즈음이면,

그냥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잠시 멍- 하게 앉아 있음이다.



멀쩡하게 있는 나의

험담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보려고

할 때 즈음이면

알던 사람들의

꾸준한 연락만큼

존재의 공터를 쉽게

채울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음이고,

때로는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시점에서 내가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지금" 이 곧 내가 현재

유용할 수 있는 자산이자,

자금 이자, 현존하는 불가피한

방식이었다.



더 사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두어야 하는 거리는 시선이

머물기에 가까운 것 같지만

꽤 다른 시공간을 살아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리하여 몇 시간이라도 잠시

같은 시공간에 있을 수 있음이

현실인 방식으로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만 같다.



아침의 악몽이 나를 지배할 때면,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사랑은 존재하고,

사람도 존재하고,

아직 나는 눈에 보이지는 않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주말은 반드시 온다,

등등의

때가 되면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는

15 분마다의 reminder가 필요할

정도로 불안하다.



감정이 나를 지배할 때,

큰 그림을 보기도 어렵고,

불안을 이길 정도의 통장 잔고가

없으면, 그렇게 불안의 주파수의

노예가 되고는 했다.



의식은 내가 의식이라는 단어를

적기 이미 전부터 존재한다.

나라는 특수 개체의 상태에

의해 일반 의식이 특수 의식으로

치환되는 방식으로, 나만의

특별한 세상 같지만,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개체가 받아들여 같은

"인간" 사이에서 신호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집단의식"에 일단 소속되어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너인 것 같은 나와

나인 것 같은 너의 사이에서

지금을 지금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은 금요일 저녁 즈음이다.




가장 단순한 팩트는

지금 너무 재미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고,

간이 가미된 팩트는

홀로 잠이 깨는 조명이 덮은 도시를

바라보는 여유를 즐기는

저녁이 있는 시간을 보내는

여성 정도이고,

그 여성은 지금 좀 춥다.



익숙한 타인이나,

긴장을 해야 하는 타인이나

"함께"있다면, 그 현실은 1로,

단순한 인과 관계에 일어날 만한

일들이 일어나는 zone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글로 건축해내는

형상이 꽤 추상적인 방식으로

나의 기억은 "현재"에

완전히 패배한 방식으로

백기를 들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현실은, 내 실물이 cctv에 의해

포착되는 대한민국 내의 어느 장소이다.



그 사람 옆이 아니라고.



현실도 연습이 필요하겠지.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또 엄청 불안할 거야.

그 시간 좀 참고 나면

그리고 운동 좀 하고 나면,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뭐라도 먹고, 뭐라도 하다 보면

저녁이 될 거야.

저녁을 좀 피곤하게 보내면

잠이 올 거야.

그리고 나면 그다음 날이 올 거야.




더 이상 누가 그립다는 말도,

"우리"가 아름다웠다는 말도,

사랑이었다는 정의도,

말을 하는 내가

뻘쭘할 정도로 소설에 가까워지는

11월 늦째 주이다.




그런데도 내가 어떻게

내 이야기가 진짜인 지 아냐고?



슬플 계획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눈물이 흐르고,

그리워하지 않기로 작적을 해도

당신과 듣던, 만들던, 보던 모든 것에

공포증이 생기고,

당신이 싫어하던 행동을

의도하지 않아도 하지 않고 있고,

도저히 요리를 할 수가 없고,

도저히 듣던 음악을 혼자 들을 수가 없고,

도저히 누군가를 만나도 웃음에 진실이 없고,

누군가의 눈을 맞춰도 거부감에

오래 그 일을 할 수 없고,

나를 주워 담아 보려고 아무래 애써도

일단은 상실감으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고 있어야 할 때,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

뭔지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뭐라고 정의하든,



이 사람은 이 사람의 진실을 살고 있다고.



당신은 정말 괜찮은지가 묻고 싶은 쪽이

더 아프다는 것을.




그리고 이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 밖의 어떠한 사실이나 현실과

무관해야 하는 그 또 다른 팩트가

일단은 너무 외로운

하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실존과 생존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