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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25. 2020

만질 수 없음이 사랑이라는   개념과 타협해야 할 때

폰이

필요 없이

매일 보던 사이에게

폰이 유일한 연락 도구일 때,

그 유일한 매체가 유일한

촉각이자 향기이자 네 모습이자

네 목소리이자 방금 뿌린

네 향수의 쓴 맛일 때.


그리고 일련의 패턴화 되어

더 이상의 변화구를 찾지 못하는

그 hello how are you today

와 good night 이 농락하는

감출 수 있는 진실의 영역이

보름달을 향할 때에도


네 곁의 너무도 익숙해야하는

집사람들은 너의 숨결을 바로 가까이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불가피 한

설렘이어야 할 때

나는 기억을 어떤 식으로

포장해야 내가 덜 다치는지

연구한 지 124 일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갈 곳을 잃고

니네 크리스마스는 오고

나는 실의에 빠졌음에도

너무 오래 같은 말을 해서

나도 그 주제를 이야기 하기 지칠 때

그래도 나는 어느 위도와 경도에서

일상을 보내는 기적을 영위중이었다.



지나가다가 택시 안 여자의

술 취한 시야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로 문이랑 팔이 부딪혀서

교통사고가 아닌 교통사고가 났다.


그 날은 교통사고 생각을 하며

사고가 나서 멈춘 시간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하냐는 그런 류의 생각을 하던 중이었기에

그 사건은 마치 내가 불러들인 일종의

경험이었을까.


팔 한 번 부딪힌

게 어깨, 허리 다리까지

돌아다니면서 나에게

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은데

씹고 있는 중이다.


몸이라도 아프면

그 사람 생각이라도

덜하지. 라고 말하는 데

그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이 지배하는

순간에 의식이 소용하는 방향은

그 순간에 상호작용 중이어야하는

대상인 방식으로

커피 주문을 하는 상대를 마주봐야 하고

돈을 내야 하고 물건을 받아야 하는

그 단위의 더도 덜도 아닌 방식으로

난  이미  현실인 방식으로

현실에 의미를 가미하기 위해

계속

가만히 잘 사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는 것인지도.


의식이 간사한 게 아니라

그것을 간사하다고 정의하면서

나의 존재적 당위성을 의심하는 내 태도가

나로 하여금 나를 필요 이상으로

괴롭힌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식은

거리의 가까움과 아주

무관한 방식으로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것


그리하여

물리적 가까움의

benefit은

만질 수 있다는 것.

접촉할 수 있는

시야에 있다는 것.



만질 수 없음이 사랑이라는

개념과 타협해야 할 때에는

일단 개념 정의를 삭제해서

남은 감정은 내 것이 아님으로

반환하는 방식으로



나는 아무래도

당신을



잃을 것 같아.


한 번도 가진 적도

없는 방식으로  


애착을 버려라

집착 그만해라

그게 사랑이라는 둥


어느 누가 어느 시기에

무엇을 정의하기로

강요받느냐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개념들이

그 소용을 달리할 때


누구의 사랑이 진실이냐고

묻고 싶은 순간에도


변덕을 부릴 나에게  


비로소 그를 떠난

124일 전에

나는 지금의 감정과 시공간을

살고 있었음을

지금 깨달아야 하는 방식으로


살 만한 정신이

비로소 들었고.


나는  


그래서 더 슬픈 방식으로

이 상실감은 치유가

불가능 함이 불가피 함을

깨닫고 있었다.


혼자 기억하기 무거워

말을 꺼내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공감하지 않아

외로운 방식으로

너에게 문자를 해보지만  



견딜 수 없는 건

물리적 접근성이

수반되지 않는 감정은

기억의 중력과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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