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이
필요 없이
매일 보던 사이에게
폰이 유일한 연락 도구일 때,
그 유일한 매체가 유일한
촉각이자 향기이자 네 모습이자
네 목소리이자 방금 뿌린
네 향수의 쓴 맛일 때.
그리고 일련의 패턴화 되어
더 이상의 변화구를 찾지 못하는
그 hello how are you today
와 good night 이 농락하는
감출 수 있는 진실의 영역이
보름달을 향할 때에도
네 곁의 너무도 익숙해야하는
집사람들은 너의 숨결을 바로 가까이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불가피 한
설렘이어야 할 때
나는 기억을 어떤 식으로
포장해야 내가 덜 다치는지
연구한 지 124 일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갈 곳을 잃고
니네 크리스마스는 오고
나는 실의에 빠졌음에도
너무 오래 같은 말을 해서
나도 그 주제를 이야기 하기 지칠 때
그래도 나는 어느 위도와 경도에서
일상을 보내는 기적을 영위중이었다.
지나가다가 택시 안 여자의
술 취한 시야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로 문이랑 팔이 부딪혀서
교통사고가 아닌 교통사고가 났다.
그 날은 교통사고 생각을 하며
사고가 나서 멈춘 시간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하냐는 그런 류의 생각을 하던 중이었기에
그 사건은 마치 내가 불러들인 일종의
경험이었을까.
팔 한 번 부딪힌
게 어깨, 허리 다리까지
돌아다니면서 나에게
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은데
씹고 있는 중이다.
몸이라도 아프면
그 사람 생각이라도
덜하지. 라고 말하는 데
그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이 지배하는
순간에 의식이 소용하는 방향은
그 순간에 상호작용 중이어야하는
대상인 방식으로
커피 주문을 하는 상대를 마주봐야 하고
돈을 내야 하고 물건을 받아야 하는
그 단위의 더도 덜도 아닌 방식으로
난 이미 현실인 방식으로
현실에 의미를 가미하기 위해
계속
가만히 잘 사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는 것인지도.
의식이 간사한 게 아니라
그것을 간사하다고 정의하면서
나의 존재적 당위성을 의심하는 내 태도가
나로 하여금 나를 필요 이상으로
괴롭힌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식은
거리의 가까움과 아주
무관한 방식으로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것
그리하여
물리적 가까움의
benefit은
만질 수 있다는 것.
접촉할 수 있는
시야에 있다는 것.
만질 수 없음이 사랑이라는
개념과 타협해야 할 때에는
일단 개념 정의를 삭제해서
남은 감정은 내 것이 아님으로
반환하는 방식으로
나는 아무래도
당신을
잃을 것 같아.
한 번도 가진 적도
없는 방식으로
애착을 버려라
집착 그만해라
그게 사랑이라는 둥
어느 누가 어느 시기에
무엇을 정의하기로
강요받느냐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개념들이
그 소용을 달리할 때
누구의 사랑이 진실이냐고
묻고 싶은 순간에도
변덕을 부릴 나에게
비로소 그를 떠난
124일 전에
나는 지금의 감정과 시공간을
살고 있었음을
지금 깨달아야 하는 방식으로
살 만한 정신이
비로소 들었고.
나는
그래서 더 슬픈 방식으로
이 상실감은 치유가
불가능 함이 불가피 함을
깨닫고 있었다.
혼자 기억하기 무거워
말을 꺼내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공감하지 않아
외로운 방식으로
너에게 문자를 해보지만
견딜 수 없는 건
물리적 접근성이
수반되지 않는 감정은
기억의 중력과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