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tic Eagle Nov 27. 2020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내 마음에 자신이 있었을 뿐인데

한 마디면 돼. 그냥 싫다고 하면 돼.

그래도 내 마음은

같겠지만, 단지 네가

받지 않는 사실이 될 뿐인걸.


그러나 어떤 논리로

정리를 하여도

물리적 거리의 벌어짐은

꽤 “인간의 사랑”을

시험하기 좋은

조건일 뿐이다.


내 사랑? 이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되지 못하는

타인을 향한 마음은

어쩌면 이쪽의 사랑의

값은 매길 수 없기에

같이 있더라도 영원한

짝사랑 인지도 모른다.



일말의 오해와

보기 좋게 일그러진

영혼의 타박상은

보이지도 않겠다는데

너무 아프다.



시작하기 시작하면

너무 그리워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에

그냥 지내는 일상이

덕지덕지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쌓여서

숨을 쉬기 버겁다.



엄마를 찾고 싶은데

그때 찾던 엄마는 없고,

예전 같지 않아야 하는

필연적 모든 사건이

이해가 되는 방식으로

그렇게 변해야 하는 것들은

그 사람도 변하게 하겠지.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난 이미 죽기 시작했다.

살아봤으니 머랭의 거품이

죽듯이,

그러나 다시 달걀 흰 자로 돌아갈 수 없는

팩트만이 연 노란, 말라가는

거품이었던 그 흔적만이

남아서

싱크대에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끝을 알기에

시작이 쉬운 만큼

다시 올 끝이 두려워서

움직일 수 없다.



말을 하여 말이 되면

소설이 왜 나왔겠어.

글 세상의 역학이

지탱하는 희미해져 가는 팩트만이

나를 오늘도 덜 울린다.



어쩌면 큰일이 났다.

난 살아 지내는

게 진부하다.

어쩌면 기회이겠지.

그러나 그 기회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까지

주위의 박수나 시선을

기다릴 것인가.



그냥 니 혼자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하면 되잖아.


근데, 둘이 좋다는 것을 알아버리면

혼자는 영원히 불충분한 상태로

내 평안을 방해하겠지/


사람일 수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

유지하지 못해서 불행해진 상태

그리고 괜찮음을 영위하기 위해

앞으로 걸릴 아주 오랜 시간.



나는 의식을 가진 채

동면에 들어갔다.



버겁다.

없는, 있는 사람을

멀리 두고 바라본다는 것이.



버겁다.

있지만 텅 빈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바라본다는 것이.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내가 세상에게 빚을 졌거나

세상에 나에게 빚을 졌거나

이 둘이 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면



그 이유로 나는 다시

소설을 쓰겠지.










작가의 이전글 삶은 진화하는데, 나는 제자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