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고독한 발걸음인지
구분하지 않고
돌부리 앞에서는
속절없이 걸려 넘어진다.
사랑을
인간을 통해 증명하려 하는
고집이 사랑의 진실보다
사람에게 집착하게 하기 충분한
방식으로 마음만 먹으면
내 고집의 드라마
상대역은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누군가에게는 이 어설픈
재롱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세금을
피할 길이 없는 만큼
세월을 피할 길도 없는
흰머리가 늘어나는
일종의 사람이었다.
외로운 근본적 원인은
신체가 의식의 자유를 저항하는
유일한 방해감인 방식으로
그 개체의
시발점부터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좋든 싫든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이자,
일련의 개체의 서사적 자아를
살아내는 것과 의식이 순수하게
차지하고 싶은 세상은 그 차원을
일치시키기 꽤 어려운 방식으로
그것을 포기하고도 시간은
지나가고, 꽤 주의가 산만한 방식으로
집중할 거리는 늘 있었다.
개념을 위해 살 때에는
시공간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꽤 그럴듯해 보였다.
사람이 중심이 되고난 이후에는
세상은 그의 세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내 세상은 갈 곳을 잃었다.
너무도 괜찮은 방식으로
나는 내 상태를 정의할 수 없다:
어느정도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세상의 스케줄이 있는 만큼
정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정상의 기준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방식으로
객관화 된 객관식에도 오류는
많았다.
유일한 Sanity는
너의 연락이 닿은 시간인 방식으로
그 시차가 유용하는 세상은
일단은 꽤 많이 젖은
스펀지를 이고 다니는 것 같다.
이런 표현의 장난과 아주 무관하게
나의 존재는 나라는 개체를
인지할 이유와 목적이 있는
세상에서나 On 이었다.
그러나 자꾸 세상의 시선에
“의해”
그 사람의 답장에
“의해”
내 존재의 감을 찾으려는
패턴이
나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방식으로 꽤 불만스러운 오후이다.
그러나 이 감정도 4 시 즈음이 되면
사그라 들었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이런 글은 쓰지 않아도
되고는 했다.
같이 사는 특정 소수와
같이 살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차이를 더 느낄 수도
덜 느낄 수도 없는
그 절묘한
승화의
순간과 아주 무관하게도
시험장의 심사위원은
나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다.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를 만날 수 없는 순간에
대한 기회 비용이다.
무모한 액수에
눈을 질끈 감다가
사고날 뻔 한 모든 순간과
무관하게
그는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그런 류의 저녁이
다가 오는 중이다.
수필이 소설이
되고
소설이 공상 과학이 되고 있는
우리의 스토리는
시간에 비례하여
기화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