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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Dec 28. 2020

왜 사는데요.

왜 사냐고

갓난 아이한테는 묻지 못한 채

넋을 놓고 바라보면서

같은 질문인데,

같은 생명인데

자신한테는

관대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물으면

답은 알면서

괜히 빈 시공간을

드라마틱하게 보내는 데

혈안이 된 것을 보면

드라마의 탓인지 인류의 본성의

탓인지 나는 더 이상 구분하기에는

이미 밝아버린 달이 어여쁠 뿐이기에

하던 생각을 멈춘다.


너무 많은 정보를

그 정보 또한 지나갈 뿐인

것들이 거의 많음에도

그를 흘리지 않으면

나는 멀쩡한 개체일 뿐이다.


무ㅓ 그렇게 서사적으로 살았다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나의 사정에 정말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은

100 번을 말하고 들어도 상대방은

처음 듣는 것처럼 듣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고

나 또한 100번을 말해도 또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랄 뿐이다.


일일신 우일신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렸다.


내가 누구든 나는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

나는 전체 동의를 하고

사회의 인간으로서

산다는 데 합의를 했다.



그러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공간을 나누고

같은 지역에서 숨을 쉬며

비슷한 생각을 하던 사람들의

숨결 하나 하나가 저마다

고유하게 의식이 수놓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1억 번을 내 러브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 한들 상대는 “자신”의 세상이

이미 전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개체가 나 일 때,

70억 명이 병문안을 올 수는 있어도

왔다가 가는 대상의

대상인 나만 링거를 꽂고 있어야 할 때


내가 유일하게 ㅇ ㅣ

세상에 존재했다는

단 하나의 증거는

아직도 나를 숨쉬고 있는

이 본체라는 것을 알았다.


비로소

나는 내가 내 목소리로

나를 나라고 할 때

고유한 현실의 문을 열고

그 목소리를 나누며

공통 분모를 늘려갈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지라도

분수의 값은 내 고유한 무게가

결정한다는 것을.



더 웃긴 건

이 사실을 몰랐어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고

알았어도 대단히

큰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 선에서

잠시 안경의 도수만 바뀐 기분이다.



선명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많을 수록

모른 척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진다.


인생은

정말 제로섬인지도 모른다.


인지하든

하지 않든

그 절묘한 균형이

나보다 먼저

나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내 목소리로 내가 내를 내라고 하는

고유한

위 경도의 어느 시각들과

그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내가 바로

여기 살아 있는 방식으로

나의 당신이

이 여기 가슴 안에

숨쉬는 이 밤


달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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