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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Jan 08. 2021

(Sub) Total Eclipse

존재와 개기월식

타인으로 차야 비로소 내가 보일 때가 있다.

적당한 자극이 없으면

나는 나로 온존 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불안할 때나 나를 찾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힘이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채워야 하는 타인은 늘 더 부족하다고 인지되는 방식으로 그렇게 없는 자존감을 채웠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나에게 줄 마음은

이미 없었다.



어떤 영향력을 끼쳤다는 감은 원했을지

몰라도.



그 영향력을 받았더라도 표현할 마음은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말을 꺼낼 생각이 없는 자들의 특권인지도 몰랐다.



표현하지 않은 사람도, 감사받을 일을 한 사람도 무언의 유언 속에서 뻘쭘하게 다음 Scene을 기다린다.


그러나 내가 땡큐 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오지 않는 대답은 이유 없이 허전하다.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심지어 그 순간에도 그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잠들지 못한다고 그들에게

불면증을 요구할 수 없었다.

결국에 누가 누구의 누구냐에 대한

대답은

각자가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부득이하게 자신을 살아야 한다는 데서

왔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이 먼저 죽으면

자신이 내가 죽었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말이 조건화하여

극적인 상황을 로맨틱하게

만드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죽으면 나도 죽겠다는 것은

생물학적 사건으로 보았을 때

하나의 생명이 추가하여 죽는 것이다.



독립적인 사건에

연결고리를 짓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자

인간의 숙명이자

인간이었어서

엮였다 갈 수 있는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는다.


비로소 나를 챙긴다.


남이 나를 멋대로 쓰면 기겁을 할 거면서

자기는 자신의 몸을 멋대로 대하는 건

오류가 틀림이 없다.


들숨과 날숨이 중립을 이루고

갑자기 든 생각을

꽤 빨리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진짜 뭔지 궁금해서

갖고 있던 것들을 다 놓았어도

나를 붙잡겠다는 사람들은

떠날 생각이 없었고, 다 놓았지만

그래도 붙잡아야 하는 것들은 있었다.



원점에 서 있다.

주름 좀 늘었고, 연락하는 사람 좀 줄었고,

마스크 안의 입은 굳게 닫혀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데

잡고 있지 않듯이

함께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빨리 놓아야 했다.

시간이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그 생각의 하류에 정체하는 바람에

다른 생각이 지나가지 못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



춥다.


이 정보가 오늘

가장 중요하다.



일단은

“살” 고 봐야

저녁 즈음 기분이 풀리면

웃을 만했다:

다음 날의

저조한 기분은 내가 기분 밸런스를

그렇게 setting을 해놓은 데서 오는

페턴화에 가까울 것이다.


괜한 마음에 우울모드로 있다가

괜찮아지는 그 포인트의 희열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베프랑 똑같은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해도

질린다는 인식보다는

그 말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 더 지배되는 데에서

매번 인간은

자신이 주의 집중되는 시점까지의

자신의 역사를

꼭 “내가”라는 서두로

닻을 내려둬야 직성이 풀리는

특유의 고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오늘도 한껏 마이너스의 기분에서 수영을 하다가

수면 위로 커피의 도움을 받아 떴다.



누가 나를 살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 의미가 없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을 테니까.

그 팩트가

숭고하게 죽겠다는 나의

삶에 대한 로맨티시즘을 무시하여

기분이 나쁜 순간에도.



그냥 살아있는 게 편해지고 있어서

조바심이 난다.

아무도 시비 걸지 않아서

오히려 더 짜증으로 뭉쳐서

기웃거린다.



그래도 웃고 나서가 편하고

그래도 “좋게 좋게”

보내는 게 수면에 도움이 되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 날은 잠을 반드시 설쳤다.



You is me

as much as

I is you


so we are

so is we


at the end of the day,

it indeed is only about

a peace of mind.


Let’s rather choose love,

shall 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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