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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Jan 12. 2021

잔소리를 잔소리라 정의하는 사람이 잔소리를 듣는다는 것

now management

그 사람이 나의 말에 의해

언어 수단을 이용해 대답을 하는

frequency가 30 년 정도 반복되면

본질적으로 그 말이 잔소리로 들리는데

그 잔소리가 잔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해서

상대가 알아듣고 이해했음에도

잔소리가 아닐 수 없으면

잔소리는 이미 잔소리가 아니라

소리였을 뿐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소리.


합리적인 혼잣말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말

그 순간이 견디기

힘든 상대방이 있다.


나에게 하는 소리라지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말을

나열하는 쪽에 가까운 말이라서 그럴까.


실제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기 보다

나에게 들어라는 말이라기 보다

자신의 두뇌가 처리하려는

일종의 하는 말에 더 가까워서

내 혼잣말의 영역이

침투당하는 기분이어서였을까.



그들이 하는 말을

자기에게 지나치게 투영해서

저 사람한테 짜증을 내고 있는데

나만 그 짜증에 지나치게 지배당하는 게

상대도 맞장구 쳐서 열 받아주면 좀 괜찮은데

상대가 상대를 안해주면 알게 된다:


이 화남은

뭐지.



일단 나만 자꾸 그 frequency의

화남에 지배당하고 있다.



잔소리, 짜증을 가져와서

왜 내가 그 Frequency: 짜증

속에 있는 것인가.


무던한 일상의 자극을

그런 데서 얻는 데 습관이 된 걸까


어떤식으로 해석하든

그 순간에 내 주의가 다른 데로 끌린 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속되면

잊어진다.


그럼 그 때 화낸 건

누구에게 보상 청구를 해야하는가.



그러나 또 기분 좋은 데 있으면

그 때는 기억도 안 난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 닥쳐서

또 그 frequency 에 제 발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화가 나 있다.



그 문의 열쇠를 갖다 버려야겠다.



보고싶은 사람도 못 보고 사는

세상에서

이렇게

쉽게 짜증과 만나면

억울하니까.



현실, 현재를

managing 하는 데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타인을 의식하면서도

지나치게 양보해서는 안되고,

예의는 갖추지만

예의없는 대접을 웃어 넘길 줄도 아는 방식으로

선을 그어줘야하며

짜증이 나는대로 화내버리면

그 직접적 타인과 나의 기억에

그 장면이 새겨져서는

잊을만 하지만

좋지않은 기억으로

자신을 안 좋은 사람 취급을 하게 되는

그 상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야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기억 속

짜증내는 자신보다

그러지 않는 자신에 대한 기억의

비율을 많이 만들어놓아야

자신을 자신있게 지킬 수 있다는 것.


지킨다는

의미는 잃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자신이 잃어버리면

타인에게 나를 무시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게 바로 나일테니까.



외롭다.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상대방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없는 것을 좇으면서

보란듯이 외롭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다.



이럴 수 있기에 인간이다.


부정하기도 지치고

만약이라는 조건절은 머리만 아프다.


인간임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

이 몸을 데려다 주고 싶다.


노동의 계절이 돌아온다.

이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떼어 놓는 짓을

안할 것을 맹세하는 방식으로

지금을 “살았고, 살고, 살 것이다’



till the date of departure.

Now is here.

Please keep that in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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