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수 있다는 것이 보장하는
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소스라치게 두려운 사람
과의 이별도
극적으로 기쁜 사람
과의 이별도
이별이란
Finish Line
을 지나면
분명 돌아볼 수 없는
수평선인데,
그 건조한 사건이
누구와의 “물리적 분리” 였는가.
라는 문제에 부딪히면
눈물과 콧물과 알코올이 들어간 물의
소환으로 꽤 질척이는
사건으로 변질되었다.
운명의 가치는
그 시작에 있다기 보다는
그 Finish line 의
건조한 정도에 있는 것일까.
헤어질 운명이든
계속 만냐야 할 운명이었든
비슷한 복제된 이별을 거듭할 수록
그 사건들은
건조해졌지만
그렇다고
먹먹해지는 가슴을
서늘해지는 눈빛을
감출 수는 없었다.
감추고 싶지도 않은
헤어짐이란 개념이
날 관통할 때면
주저앉아
흔한 이별 노래를 소환하는 게
전부이지만
운명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면
그는
시작된 순간이 아니라
일시정지 된 순간이 아니라
나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마지막 순간
눈을 마주치고
눈 인사라도 할 수 있을
그 사람까지가
한 개인의 운명을
“완성”한다는 것을.
운명의 그 고귀했던 시작만큼
중요한 건
일상적인 순간들의
예고없이 마주치는 눈들,
무턱대고 스치는 손길들,
매정한 옷깃의 스침,
얼떨결에 낯선이와 나눈 웃음...
이라는 것을.
그 모든 사소한
심장 떨림의
연장선 상에서
다시 우리가 만나서
말도 안되는 어색한 웃음을 나누고는
다시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만 있다면
I wouldn’t mind living for tomorrow, mate.
I LoVe YoU
just enough to forget about you